짬짜미가 부른 실손보험 수익 저하…피해자는 선량한 가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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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미가 부른 실손보험 수익 저하…피해자는 선량한 가입자
  • 박한나 기자
  • 승인 2019.08.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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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도덕적 해이 여전히 ‘성행’…“무분별한 의료과잉, 비급여 표준화 해야”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과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과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박한나 기자] #. 직장인 A씨(31)는 최근 장염 치료 때문에 서울 시내 한 내과를 찾았다. 내과 의사는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냐”고 먼저 물었다. A씨가 실손보험이 있다고 하자 “기운이 없으면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 보험처리가 돼 치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A씨는 수액을 포함해 6만원 상당의 병원비를 냈다. 이후 그는 보험사로부터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5만5000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 직장인 B씨(52)는 시력이 안 좋아진 것을 느끼고 회사 근처 안과를 방문했다. 의사는 간단한 시력검사 후 “시력교정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렌즈가격만 300만원에 달해 B씨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자 의사는 “백내장 수술로 위장해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저렴한 렌즈가격으로 교정술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심 없이 보험사기에 가담했다.

#. 택시운전자 C씨(58)는 교통사고 후 한의원에 방문했다. 한의원에 일하는 사무장은 “가벼운 염좌로 보이지만 후유증이 무서운 만큼 일주일에 최소 두 번씩 추나 치료를 받으시길 권한다”고 했다. 최근 비급여였던 추나요법이 급여화돼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꾸준히 교통사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C씨는 2회 치료에도 어깨가 좋아졌음을 느꼈지만 총 10회의 추나시술을 꾸준히 받았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않는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실손보험이 의료계와 환자의 도덕적 해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야 하는 일부 병원과 낸 보험료 이상의 보험금을 타고 싶어하는 환자의 거래가 결국 130%에 육박하는 손해율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보험료보다 지급되는 보험금이 더 많은 적자 구조를 한순간에 개선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비급여 코드 표준화 등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의료계의 반대로 쉽지 않아 결국 피해는 선량하게 보험료를 꾸준히 내는 가입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손해율 상승 원인 ‘과잉진료’ 적발 어려워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과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서 고심하는 이유는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이 130%에 육박해 보험료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손해율 상승의 원인이 과잉 진료에 있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은 치료 목적이 아닌 항목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양제, 종합비타민 구입 비용, 성형수술과 같이 외모 개선 목적의 의료비, 건강검진에 필요한 검사비, 진단서 발급비용 등은 보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을 실손보험금으로 지급되는 항목으로 치료 목적의 진단서로 조작하거나 항목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보험처리를 할 수 있다. 몸이 허해서 영양주사를 맞는 것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지만 치료 목적의 영양주사는 보험처리가 된다. 게다가 환자가 아파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보험사로써는 이를 반박할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

병원으로써는 지속적인 환자 유치를 통해 수익 증가를 얻을 수 있고, 환자들은 최소한의 자기부담금을 내면 거의 ‘공짜’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다. 실손보험 자기부담금이 최대 30%에 불과해 병원들이 과잉진료를 통해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하면,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으로 부담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업계 “비급여 표준화 체계 마련 시급”

결국 과잉진료의 피해자는 선량한 소비자다. 일부 가입자가 무심하게 가담한 보험사기 때문에 실손보험료가 매년 상승하는 것이다. 개선책 없이 이 같은 추세가 향후 몇 년간 지속될 경우 보험료는 최소 3배 이상 뛰어 실손보험에 가입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자를 보는 손보사들이 실손보험의 판매 중단까지 검토하고 있어 결국 비급여 과잉 진료의 대책에 실손보험의 존폐가 달린 것이다.

업계에서는 비급여 체계를 손보지 않는 이상 실손보험료는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목소리다. 현재 실손보험에서 과잉진료가 벌어지는 이유는 피부과, 정형외과, 내과, 한의원 등 각각의 병원에서 행해지는 비급여 치료 항목의 치료비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비급여의 경우 진료비 코드조차 표준화가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액주사의 경우 의료의 원칙은 먹는 약으로 부족할 때 보조제로 1-2번 처방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 주기적으로 수액을 맞는 경우가 거의 모든 병원에서 허다하며, 과잉진료에 해당하지만 환자들조차 자부담 1-2만원에 8만원짜리 주사를 맞는다는 걸 보험사기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마 보험사들에 청구되는 실손보험금이 없어지면 현장에서 문 닫을 병원들은 정말 많을 것 같다”며 “지난 10년 넘게 보험처리 건이 아닌데 보험처리 건으로 돌리면서 공단 부담금은 부담금대로 오르고, 고객 본인 부담금도 오르고, 새로운 비급여는 끊임없이 생기고, 피해는 일반 고객에게 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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