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본 국회회의록에 '개인청구권 불소멸' 기록만 여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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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본 국회회의록에 '개인청구권 불소멸' 기록만 여러번
  • 박숙현 기자
  • 승인 2019.08.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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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거듭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한일관계와 관련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해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했다.

우리 대법원의 지난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내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살아있는지 여부는 한일 각 외교당국의 주장의 핵심 논거다. 당연히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일본 국회회의록 시스템에서 검색해봤다. 본격적인 회담이 진행됐던 1957년부터 현재까지 기간 기준 ‘한일청구권’이라는 키워드로 총 188건이 나왔다. 1990년대 들어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자 한일청구권 의미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얘기가 오갔다. 회의록에 따르면 일본 정부 입장은 ‘평화조약 4조에 근거한 한일협정으로 양국 및 양국간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으며 양 정부는 이와 관련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의 청구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해석도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1991년 12월 국제평화협력특위에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당시 조약국장은 한 의원이 ‘국가에 대한 문제이지 개인에 대한 배상은 포기한 게 아니지 않나’라고 묻자 “자국민 부담을 생각하면 상대국이 이해해줄 만큼 간당간당한 부분까지 타결해나가는 것이 정부의 명분”이라면서도 한국 국민의 개인 청구권이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개인이 클레임(손해배상)에 대해 주장을 하거나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지만 국가간 문제로서 외교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을 맺은 해에 법률 144호를 제정해 국내법적으로 일본 정부에 대한 청구권 소멸을 없애는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여기에서도 채권 등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는 실체적 권리에 한하며 이외의 청구권 소멸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회의록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 권리가 한일협정의 의해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제2조 1항)’됐으며 ‘정부가 모든 청구권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제2조 3항)’는 조항을 해석상 세트로 보고 ‘위자료청구권을 포함해 일절 개인의 청구권은 소송은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구제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한일 협정에서 조약에 따라 피해자 배상 처리는 각 정부가 국내적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민관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특별법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600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또 한일협정상 ‘당사국’이란 행정부 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해당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의 이런 주장은 식민지배 당시 피해를 입은 우리로선 너무나 억지다. 이 논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한반도가 좌우로 나뉘며 전후 체제인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초대받지 못했고,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배 ‘불법성’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던 아픔에서 비롯됐다. 냉전 체제 세계 질서의 연장선이다. 이제 벗어나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일본에 적극 소통과 대화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25 전쟁 후 남북간의 골을 ‘햇볕정책’이라는 청사진으로 풀어냈던 것처럼 일본에도 이를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어느 정권에서나 일본과 협력적인 외교정책은 정치적 이득이 되지 못한 면이 있다. 이번 문재인 정부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이 우리를 향해 어느 때고 식민시대의 불법성을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도록 하는 동아시아 평화 전략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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