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급증하는 ‘상장사 횡령ㆍ배임’ 사고 방지 대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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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급증하는 ‘상장사 횡령ㆍ배임’ 사고 방지 대책 없나
  • 황동진 기자
  • 승인 2012.11.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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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황동진 기자] 국내 상장사 임직원의 횡령ㆍ배임사고가 급증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비료업체인 남해화학이 회사 직원의 수백억원대 횡령ㆍ배임 혐의로 매매거래가 정지되면서 소액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남해화학은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급한 은행을 상대로 민ㆍ형사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발끈하고 나섰지만, 엎지르진 물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농협경제지주의 자회사인 남해화학은 대주주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소액투자자 2만8천명이 보유하고 있어 향후 손실에 대한 법정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해마다 증가하는 상장사 임직원의 횡령배임사고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뉴시스)
남해화학은 지난달 29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430억원 상당의 횡령ㆍ배임혐의로 회사 직원 조모(46)씨에 대해 공소를 제기했다고 공시했다. 혐의금액은 자기자본의 11.7%에 달한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남해화학에 대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29일부터 매매거래를 정지했으며, 지난 5일 상장폐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거래소가 불성실 공시 법인 지정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남해화학ㆍ농협, ‘늑장대응’ 사태 키워

검찰에 따르면 남해화학 유류사업본부장인 조씨는 지난해 6월 유류도매업체 경인에너지 대표 정모(49)씨가 신한은행 남양주 모 지점에서 발급받은 지급보증서가 가짜임을 알고도 400억원어치의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탱크로리 약 4,000대 분)을 경인에너지에 공급하고 2억6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남해화학에 다른 가담자가 있는지, 금품이 더 오간 정황이 있는지 등을 수사할 계획이다.

남해화학은 이날(29일) 즉시 자사 홈페이지에 주주들에게 사과문을 게재했다. 남해화학은 사과문에서 이번 사건은 신한은행 지점장이 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정교하게 위조된 지급보증서를 전달하여 발생한 것으로 당사 직원은 지급보증서가 위조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국거래소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관련 민형사 소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주주들의 손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는 남해화학이 29일 검찰의 공소 제기 사실을 공시하기 일주일 전(22일) 이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 남해화학 서울사무소 유류사업팀에 문의를 하였으나 담당 관계자는 “언론사와 할 얘기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더욱이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지난해 6월 발생했는데, 남해화학의 모기업인 농협중앙회는 그해 8월 남해화학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음에도 단순한 유류 외상거래 부분의 문제만을 발견하고 조씨의 430억원 배임과 관련해서는 적발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내부 감사 시스템이 유명무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은 지난해 8월 남해화학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사실이 없다”며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수사 중인 상태이므로 향후 재판 결과가 나온 후에야 자체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남해화학과 농협중앙회가 사건 초기에 진위를 파악하고 조치했다면 매매거래 정지와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손실에 대한 보장에 대해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장사 횡령ㆍ배임사고 해마다 급증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거래소로부터 받은 ‘상장사 경영진 범죄공시 현황’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67개, 코스닥 상장사 186개사로 총 253개 기업에서 횡령·배임이 발생했다.

최근 5년간 상장사 경영진의 횡령배임 규모는 코스피가 1조4587억원, 코스닥은 2조3187억원으로 총 3조777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 상장사 중에는 하이마트가 2590억원으로 횡령 규모가 가장 컸으며, 뒤를 이어 솔로몬저축은행(1318억원), 한국저축은행(1145억원) 순이었다.

코스닥 상장사는 에어파크(163억원), 에이원마이크로(153억원), 보광티에스(127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보광티에스는 대표이사가 회사 자기자본 대비 553%에 달하는 127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5월 발각돼 지난 5월 증시에서 최종 퇴출됐으며, 앞서 대표이사와 이사 등 경영진 횡령 사실이 발생한 디에이치패션(5월11일)과 씨티엘티크(1월10일) 에이원마이크로(1월9일) 등도 즉각 상장이 폐지됐다.

‘유명무실’한 공시규정과 내부통제 시스템

유가증권 시장공시규정과 코스닥시장 공시규정에 따르면 상장회사는 자기자본의 100분의 5(대규모법인의 경우 100분의 3) 이상의 금액에 상당하는 임·직원 등의 횡령·배임혐의가 확인되면 횡령·배임액에 대해 공시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상 임직원 부정행위가 100% 드러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임직원 횡령ㆍ배임사고로 투자자 피해가 줄을 잇고 있지만 관계당국은 이를 사전에 감지해 처벌할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횡령ㆍ배임은 회사 내부 경영진에 의해 몰래 진행되기 때문에 일일이 감독당국이 조사할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라며 “회사가 공시를 통해 밝히지 않으면 사실상 사전에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번 남해화학 횡령배임사고처럼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아 사태를 키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중소 상장사의 경우에는 아예 이런 시스템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우려가 되고 있다.

일례로 엔케이바이오는 최대주주이자 실질적인 사주였던 김모씨와 윤모 대표 등이 두 차례에 걸쳐 회사 자금 약 120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지난 6월과 8월 공시했는데,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명동 사채업자 출신으로 밝혀졌다. 회사는 ‘기업사냥꾼’이 회사를 지배하고 돈을 빼돌리고 있었음에도 이를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2008년 코스닥시장에 바이오주 바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우량기업으로 평가받던 엔케이바이오는 결국 정리매매를 거쳐 지난 4일 최종 상장 폐지됐다.

상장사 횡령·배임 악순환 끊을 수 없나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로는 상장사 임직원의 횡령배임 사고를 원천 봉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상 기업들이 마음먹고 속이려면 투자자들은 손 놓고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관계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 자본시장연구원에 상장사의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 마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 불구하고 상장사 임직원의 횡령 배임 등 도덕적 해이 건수 변화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게 거래소 안팎의 평가다.

최근 국감에서 급증하는 상장사 임직원의 횡령배임 사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상장법인에 대한 횡령·배임은 자본시장의 건전성 및 신뢰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소액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범죄행위를 저지른 임원이 타 상장법인 임원 선임 시에는 반드시 공시하도록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도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횡령배임은 일반 투자자들이 쉽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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