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외면하고… 청와대는 무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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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외면하고… 청와대는 무시하고…
  • 서태석 기자
  • 승인 2009.01.28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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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사고’ 후폭풍… 사면초가 한나라당

[매일일보=서태석 기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민간인 집단 사망 사건으로 불리는 이른바 ‘용산 참사’ 후폭풍이 제2차 입법전쟁이 예고돼 있는 2월 정치권을 뒤흔들어놓을 전망이다. ‘용산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떠오르면서 언론 관계법 등 쟁점법안으로 갈 길이 바쁜 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이 배제돼 논란을 빚고 있는 ‘1.19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 일정이 2월 임시국회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욱 정부와 여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설 연휴를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청와대는 심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 사이에선 용산 사태가 가깝게는 개각 추가 인선, 멀게는 4월 재보선 등 정치적 주요 현안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용산 참사로 인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선 진상조사, 후 책임자 문책’이라는 원칙 아래 민주당의 파상공세에 맞서고 있지만, 설 민심 악화를 우려해 우선 설 전에 중간수사 결과라도 발표해야 한다며 분주한 모습이다.

2월 입법전쟁을 앞두고 터진 ‘대형악재’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자칫 인사청문회와 맞물려 여권이 추진 중인 중점법안까지 좌초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월 국회 쟁점법안 일괄처리 사실상 좌초위기
1·19 개각 놓고 내부불만 위험수위…자중지란
청와대의 당 홀대…국정운영 당청간 엇박자 내
용산 사태 터져 민심 악화…당 추진 동력 악화
4월 재·보선 악전고투…국민 신뢰 회복 급선무


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은 용산 철거현장 참사를 둘러싸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파면 요구가 거세지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진화에 고심하면서도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박희태 대표는 악화된 민심을 의식한 듯 ‘설 전 진상조사 발표’를 주문했고, 전날 당직자회의 불참으로 당 지도부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다는 추측을 낳기도 했던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 내내 눈을 감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일체 발언을 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는 회의 직후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순천향병원 4층 분향소를 찾아갔지만, 유족들로부터 조문을 거절당하는 등 험악해진 분위기를 몸소 체험했다. 박 대표를 비롯한 10여명의 의원들은 분향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높으신 분들의 조문은 받지 않겠다”는 상주와 유족들의 격렬한 몸싸움에 밀려 끝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유족들은 일행을 향해 “여기는 왜 왔느냐, 살려 내라, 살인마”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극렬하게 항의했다. 자리를 함께 했던 박순자 최고위원은 “이렇게 유족들의 저항이 심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여론이 한나라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한나라당 향해 “살인마” 맹비난

박희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설날 민심이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매우 급하게 확산되고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며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관계당국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진상을 공개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경찰청장 내정자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사퇴 시기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행정안전위위원회 위원들이 김 청장에게 자진사퇴를 하는 것이 좋겠다”며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는 2월 임시국회에 뇌관이 될 수 있는 용산 사태의 파장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우 야당의 사퇴 요구를 ‘정치공세’로 규정하며 분리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도 단호히 거부했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조사는 정치적인 주장이다. 너무 이 부분을 확대하면 시민을 괴롭히는 청문회가 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도 “이번 사고의 배후세력이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사건만 생기면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는 데 그동안 국정조사에서도 정치공세가 주목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내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은 “안전대책을 충분히 세우지 않고 진압해 사망사태가 생긴만큼 지휘라인 책임자는 즉각 문책해야 한다”고 말해 당 지도부의 대응방침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원 의원은 또 “국정운영 기조에 대해 전반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책임자를 추궁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도 불가피하다”며 ‘여권 책임론’을 거론, 당내 이견을 드러냈다.

당초 한나라당은 개각에 따른 장관 및 교체된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다음달 10일까지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상임위 심사에 들어가 쟁점법안을 일괄처리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여권 플랜 좌초위기

그러나 여권의 이 같은 플랜은 사실상 좌초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후속 개각까지 늦춰지면서 인사청문회가 2월 중반까지 지속될 공산이 커졌고, 앞서 개각과 관련해선 당은 이미 자중지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단 청와대의 1·19 개각을 놓고 확산되고 있는 한나라당 내부의 불만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당 소속 의원 출신 정치인의 기용을 주문했음에도 이 같은 건의가 철저히 묵살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와 정보를 공유해야할 박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개각 명단을 뒤늦게 통보받기까지 해 청와대가 당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특히 박 대표는 전날 청와대 정례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개각 문제를 놓고 독대까지 했지만, 경제팀을 중심으로 한 소폭 개각이라는 말만 전해들었을 뿐 구체적인 개각 명단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당사로 돌아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던 도중에서야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명단을 통보받았다는 것이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최고위원들의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가 당 지도부를 너무 홀대하는게 아니냐는 불만이 당 안팎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청와대가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자꾸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당에 영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정 운영에서도 당청간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여옥 의원은 “지금 여의도는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 여의도 사람들을 무시한 데 대해 분노와 좌절을 느끼는 듯 하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한 뒤, “한 마디로 여의도를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한구 의원은 “청와대가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식의 자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론은 냉대와 무관심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여론 또한 호의적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2년차를 맞이해 실시간 개각은 아직 완료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MB식 강권 통치틀의 완성’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때문에 ‘2기 내각’의 효과는 사실상 반감됐다는 평가다.

이처럼 개각 과정에서 당청간 소통 부재가 드러났고, 여기에 용산사태까지 터지는 바람에 설 연휴 민심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부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가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여권 내 한 관계자는 “개각 과정에서 여당이 소외된 데 따른 불만감이 고조돼 있는 데다 법안처리에 총대를 메야 할 당 주류의 추진동력도 약화돼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여권 안팎에서는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용산 철거민 강제해산 과정에서 벌어진 참사에 대해 “박정희 시대에도,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면서 “이명박식 공안통치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4월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즉, 용산 사태에 따른 2~3월 ‘제2의 촛불집회’가 예상되면서 여당의 악전고투가 예상된다는 것.

결국 정부와 여권이 용산 사태를 어떻게 민심과 가깝게 수습하느냐, 그리고 향후 개각 추가 인선에서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느냐 여부에 따라 향후 한나라당의 운명이 갈릴 것이라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서태석 기자 <seo@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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