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강경정책 딜레마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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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北 강경정책 딜레마 빠졌다
  • 서태석 기자
  • 승인 2008.12.08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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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파탄에 정치권 폭풍전야

[매일일보=서태석 기자]남 북관계가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개성공단을 볼모로 한 북한의 대남압박과 ‘북한 길들이기’에 나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마주보고 달리는 두 기차처럼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으면 개성공단 폐쇄의 2단계 조치, 민간교류 등 남북관계 전면 차단의 3단계 조치를 쓸 것으로 대북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바람대로 대북강경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 보인다.

여기에는 낙관론이 존재한다. 시간을 끌면 결국 북한이 어쩔 수 없이 우리 측에 손을 내밀 것이라는 ‘낙관적 분석론’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정치적 계산도 한 몫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 결집이라는 계산된 움직임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자유민주체제 통일 발언’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로 강경보수파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 상태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남북 간의 갈등이 더욱 악화됨과 동시에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남북관계 파탄으로 남북경협이 흔들리는 등 대한민국 경제가 그렇지 않아도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런 위기가 더욱 커지면서 우리 경제에 새로운 악재로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남북 간 긴장에 따른 국가신인도 하락과 경제적 파급이 상당하다”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간 갈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고 진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에서의 무력충돌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 가능성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최악의 납북관계 정국현안 핵으로 떠오르며 여야 힘겨루기 전운
대외신인도 추락에 오바마 북미 직접외교 추진… 한국은 후순위
MB 강경기조 ‘딜레마’ 빠지자 당내선 비판론vs힘실어주기 양분
DJ “MB 역주행 막아야” 민주연합 주문에 민주-민노 공조 탄력


이 같은 ‘예견된’ 변수가 만약 현실화될 경우 대한민국에 대한 대외 인지도는 갈수록 추락하는 등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현 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남북관계 파탄과 경제위기 심화로 이어지게 되면 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대외신인도는 이미 추락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차기 미 행정부의 향후 경제.외교 정책 등과 관련해 미국 측 전문가들과 협의차 방미(지난 5일 기준) 중인 정몽준 한나라당 한미비전특위 위원장은 3일 뉴욕특파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상당히 후순위로 밀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미 전문가들과의 만남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친 민주당 성향의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작성한 G-16 회의(G-7을 대체해 만들어지게 될 세계 주요 경제국 협의체의 가상 시나리오중 하나) 멤버에서 우리나라가 빠지고, 남아공화국, 나이지리아, 터키, 멕시코 등이 들어가 있다”면서 “이들 나라들이 미국의 이익과 첨예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규모로 따지면 우리가 G-16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가 우선순위 16위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남북관계가 악화됨과 동시에 북미관계가 진전되면서 대한민국이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셈이다.

여러 정황상 북미관계의 발빠른 진전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과정에서 오바마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미국진보센터(CAP)는 오바마 당선인에게 “대통령 취임 뒤 100일 안에 북한에 고위급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미국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박사는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매우 조기에 평양에 미국 이익대표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남북관계는 단절될 것이 확실하고 반대로 북미관계는 끊임없이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의원의 지적대로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국으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대한민국의 딜레마는 이명박 대통령의 딜레마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한미공조를 위해 대북정책을 180도 전환하느냐, 현재처럼 대한민국 내 보수우파세력을 위해 대북강경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향후 대북정책 전환을 둘러싸고 보수세력이 양분하면서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극우보수세력과 뉴라이트 등 ‘한국판 네오콘’은 현 정부에게 지금의 강경책 유지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온건적 보수세력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보조를 맞추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건파 보수세력 진영에선 이미 “우리 스스로 ‘통미봉남’을 만들고 있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고, 기독교계 상당수 보수인사들도 현 정부에 대북정책 수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정치세력은 이미 대북문제를 놓고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친MB계가 대북강경론을 역설하고 있는 반면, 친박계 및 중도파는 대북온건론을 주장하며 매일같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김대중 "이대론 안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대북온건파를 대표주자다. 박 전 대표는 “5년마다 바뀌니까 정책 하나 뿌리내리는 것도 없고, 한번 정권이 바뀌니까 사람, 정책, 다 바뀌어 대북정책이 바뀌니 이래서 되겠는가”라며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가 경색된 남북관계 해소를 위해 대북특사를 파견할 경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적합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ARS여론조사(95%신뢰수준에 ±3.1%p)를 실시한 결과 국민 39.6%가 대북특사로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중도파인 남경필 정의화 홍정욱 의원 등도 유연한 대북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이 대통령의 실용, 상생·공영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북한의 행태를 논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당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가 선도적이고 적극적인 전략 수립을 통해 남북관계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두고 야권은 사실상 ‘반MB연대’ 구축하여 전면전 나설 조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달 27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고 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사회세력 등 MB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이 대통령의 역주행을 막으라고 주문했다.

DJ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함에 따라 그간 ‘야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김 전 대통령이 강력한 투쟁을 요구함에 따라 ‘대안야당’과 ‘선명야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민주당이 고민을 끝내고 여권과 전면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걸, 최문순, 안규백 의원 등 9명의 개혁성향 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하는 9인 모임’을 결성하고, 지난 2일 김근태 정동영 두 전직 당의장과 천정배 의원 등 50여 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하는 ‘민주연대’가 출범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들은 실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세균 당대표에게 정부와 여당에 당당히 쓴소리를 던지라고 압박 중이다. 정세균 대표도 변화하는 움직임이다. 그는 최근 한 강연에서 “현 정권 국정운영 태도로 봐선 우리가 선의로 협력하고 싶어도 도저히 협력할 수 없도록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과거 야당처럼 투쟁적이고 저항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달 25일 정세균-강기갑 대표 회담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두 대표의 회동 이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공조는 탄력을 받는 형국이다. DJ의 ‘민주연합론’으로 양당 간 공조가 한층 힘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현재 정치권과 시민단체, 외부 전문가그룹을 포함한 ‘범국민평화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상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예산안 처리 시한을 다음 달 9일로 못박으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와중에 친MB계 의원들은 “다수당의 힘을 보여야 한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여야 간에 일전불사의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서태석 기자 <seo@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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