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관여 논란에 또 ‘만수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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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관여 논란에 또 ‘만수 타령’
  • 서태석 기자
  • 승인 2008.11.10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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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재정장관 ‘헌재 접촉’ 의혹 일파만파

● 강 장관, “위헌 결정 얘기 들었다” 실토
● 판결前 헌재 접촉 ‘권력횡포’ 논란 가열
● 강 장관·재정부 서로 다른 해명 왜 하나
● 야권 “헌정질서 유린한 일대 폭거” 공세

지난 6일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고위인사가 오는 13일로 예정된 종합부동산세 위헌소송 선고를 앞두고 헌법재판소 고위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정부가 헌재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됨과 동시에 국회는 또다시 파행을 겪고 있다.

재정부 측은 부랴부랴 “헌재에서 소송 결과에 대해 어떤 얘기도 듣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헌재 관계자를 접촉해 압력을 행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에 대해 여러 의혹을 내놓고 있다.

특히 재정부의 뒤늦은 해명이 “일부 위헌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강만수 장관의 국회 답변과 차이가 있는 점도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13일 종부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사건 결정을 내린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종부세에 대한 헌재의 결정 전망을 묻는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의 질문에 “헌재와 접촉을 했다”라고 충격적인 말을 해버렸다. 강 장관은 그러면서 “확실하게 전망할 수 없지만 일부 위헌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강 장관은 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헌재 판결을 알게 된 경위를 묻자 “헌재가 정부의 입장과 통계자료 등을 요청해 실무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심 재판관으로부터 위헌으로 결정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실토했다. 이 의원이 곧바로 “헌법재판소는 선고 전까지 결정 방향을 공개해서는 안되는데, 헌재 측에 정부의 입장을 설명한 인물이 누구냐”고 묻자 강 장관은 “세제실장이 보고했다”고 답변했다.

종부세 관련 헌재 접촉 ‘사법부에 압력’ 논란
행정부, 입법부 넘어서 사법부 위에 군림하나

이를 두고 야권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서 의원은 같은 날 오후 대정부 질문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군사독재처럼 행정부가 사법부위에 군림하겠다는 위헌적 발언”이라며 “행정부가 입법부 위에 군림하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사법부마저 군림하려고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강 장관은 그러나 “오해를 유발해서 유감”이라고 짤막하게 해명했다.

강 장관의 이 같은 해명에 야권은 크게 당혹해하는 기색이다. 야권은 강 장관 측이 헌재 측과 접촉했다고 당당히 발언한데 대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일대 폭거”라며 비난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정회 후 열린 긴급 의총에서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10년 간 축적한 민주주의 질서는 함부로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우리는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건을 목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 원내대표는 또 “행정부가 사법부에 접촉해서 재판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재판결과를 통보받은 것은 어떤 사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위헌적 행위”라며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의 사과 및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피의자들의 변호사들조차 판사들을 만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당사자인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주심재판관을 만났고 일부 사실이 위헌이라는 답변까지 받아낸 것은 중대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일대 폭거”라고 주장했다. 이종걸 의원은 한발 나아가 “여당 의원의 우호적인 질문에 무의식중에 엉겁결에 나온 아주 신빙성 높은 진술이었다”며 “위헌판결이 날 경우 이미 납부한 사람에 대한 반환문제가 발생해 국가에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모든 책임의 정점에 서 있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전원은 이에 대한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세환 의원은 처음 질문을 제기한 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정부 차원에서 이미 의도된 각본에서 헌정질서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재판관이 그 어떤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도 강 장관이 (의원 질의에 일방적으로) 답변을 했다면 위헌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이른바 ‘짜고치기 고스톱’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강 장관을 개인으로 내보내고 답변할 수 있도록 한나라당 의원이 질의를 유도한 게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상당히 중차대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원고는 종부세를 낸 납세자들이고, 피고는 정부인 국세청인 상황에서, ‘합헌’을 방어해야 할 정부가 거꾸로 헌재에 위헌 의견을 제출했다는 의혹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낱낱이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김종률 의원은 “헌재 주심재판관 뿐 아니라 헌법재판 연구관들도 마지막 방망이를 치기 전까지는 심증을 노골적으로 주고받지 않는다”며 “정말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성까지 정권 맘대로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백일하에 드러낸 헌정사상 유례없는 폭거”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예상대로 ‘강만수 구하기’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곧바로 이날 저녁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강 장관의 발언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부적절한 답변이었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강 장관의 발언이 ‘실언’이었고 편들기에 나섰다. 홍 원내대표는 “헌법 연구관을 재판관으로 오인한데서 비롯된 실언이었다”면서 “헌법 연구관이 위헌 의견을 피력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마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이 이것을 마치 사법부의 압력이 있는 것처럼 몰고가는 것은 실체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려는 민주당 내 강경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쪽의 견해가 다른 까닭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과창조의모임 3교섭단체 원내대표는 6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과 관련해 국회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 민주당 측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응하지 않을 경우 야당끼리 공조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선진과창조의모임은 응할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 이후 이처럼 야당이 ‘헌정교란 사건’, ‘위헌적 행위’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정치권이 또다시 분열 양상을 보이자 재정부는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내고 “세제실장과 담당국장은 헌법재판소의 수석연구관과 헌법연구관을 방문해 재정부의 입장을 설명한 바 있으나, 헌법재판관과 어떠한 형태로든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헌법재판소 관계자로부터 재판결과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들은 바가 없으며 관계자에게 문의한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헌법재판소도 공식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서긴 마찬가지. 헌재 측 한 관계자는 “(종부세 위헌소송 사건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서태석 기자 seo@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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