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다녀간’ 한국땅 현주소] 한국은 미군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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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다녀간’ 한국땅 현주소] 한국은 미군의 놀이터?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10.31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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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한국서 ‘즐겁게 놀다’ “Good-bye” 떠나는 미군
기지촌 여성문제도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도 ‘나 몰라라’

기지촌 여성노인 92%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미군이 쓰고 오염시킨 땅, 치유비용 최대 15조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 2006년 반환된 부산의 하얄리아 부대.
미국의 ‘속국’은 아니었지만 지난 50여 년간 우리나라 곳곳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2년 체결된 협정에 의해 우리나라는 미군이 점유해 온 상당수의 우리 땅을 반환받게 됐고, 이 과정에서 해당지역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 등 심각한 환경문제가 발견됐다.

그러나 미군은 정화비용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는 상태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에 대해 우리 정부 역시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이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과거 ‘달러를 벌어 들인다’며 민간외교관으로 칭송받던 기지촌 할머니들의 대부분이 현재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들 여성들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군은 ‘아무런 제약 없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아무런 부담 없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남아있는 자국민들이 고스란히 미군이 남긴 ‘짐’을 떠안게 된 것. 미군이 떠난 후 남겨진 한국의 ‘상처’를 <매일일보>이 진단했다.

“지금 나에게 제일 필요한 게 방이여, 방.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소원이 있겠어. 아파서 병 들은 게 빨리 다 나았으면 좋겠지만 그게 인력으로 돼? 살 방이라도 있어서 돈 안 나가면 얼마나 좋아. 평생을 그냥 방세 내고 사느라고 남 좋은 일만 다 시켰어.”

기지촌에서 젊은 날을 보내고 현재도 미군이 떠나간 자리에서 남은 생을 이어가고 있는 J 할머니의 넋두리다.

▲ 기지촌 클럽의 아가씨들을 묘사한 영화 <고고70>의 한 장면.
1950년 남북간의 한국전쟁은 미국군의 지원으로 ‘기약 없는’ 휴전상태에 들어갔고, 이후 남한과 미국은 한미동맹을 맺고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동맹직후 미국은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에 고마운(?) 배려를 베풀었다. ‘한국인들을 전쟁의 위험에서 보호해주겠다’는 명목아래 남한지역 100여 곳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미군을 주둔시킨 것. 

이후 미군기지 주변에는 ‘돈 많은’ 미군들의 주머니 속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장사꾼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기지촌’이 형성됐고, 그때 생긴 업소 중 대부분이 미군들의 성욕을 해소시키기 위한 성매매 업소였다.

그러나 당시 미군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달리 ‘확실히’ 유연했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이었던 터라 ‘비록 미군에게 몸은 팔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달러로 한국경제가 성장한다’는 인식으로 기지촌 여성들은 ‘산업역군’ ‘민간외교관’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노인이 된 기지촌 여성들의 대부분은 현재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오는 출구 없는 미로, ‘기지촌’

햇살사회복지회가 6월부터 두 달간 경기도 내 의정부, 동두천, 평택, 송탄, 파주지역 기지촌 여성노인 133명을 방문조사한 결과인 ‘경기도 기지촌 여성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지촌 할머니의 93%가 질병을 앓고 있었다. 또 이들 중 82%가 전∙월세 등에서 거주하는 독거노인이었고 자녀 등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경우는 18%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는 35.3%였으며 월수입은 30만~50만원이 40.4%였고 10만~30만원이 21.3%, 10만원 이하와 50만~70만원, 70만원 이상이 각각 12.8%로 나타났다.

이들은 가장 어려운 점으로 주거와 생활비 등 경제적 어려움(72.1%)을 꼽았고 건강(16.3%), 사회적 낙인(3.1%), 외로움(3.1%)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한 여성들 모두 주거∙생활비∙공동체 공간 마련 등 ‘정부 지원’을 가장 절실히 원한다고 꼽았지만 실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950년대 당시 남한사회는 절대적인 빈곤상태였다. 기지촌 할머니들은 생존을 위해 ‘기지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던 것.

한국전쟁 이후 여성들은 전쟁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남편, 아들 등을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또 당시 산업이 발달되지 않아 여성이 노동을 할 수 있는 분야는 식모살이 등 몇 가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들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는 게 설문에 응답한 이들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이다.

또 사회적으로는 ‘산업역군’으로 칭송받았을지 몰라도 보수적인 한국사회의 인식 속에서 이들 여성들은 ‘창녀’로 손가락질 당해 기지촌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했다.

기지촌에서 번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으나 오히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적 질타와 저학력이라는 열악한 조건과 맞물려 기지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기지촌은 마치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는 ‘미로’와 같았던 것.

정부 비호아래 이뤄졌던 ‘기지촌 성매매’

이와 관련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신은주 교수는 여성들이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도록 유인하고 알선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정부는 기지촌에 대해 2중 정책을 취했다”며 “정부에 의해 장려된 기지촌 사업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해 경제발전을 꾀하는 한편 여성을 철저히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지촌 여성 문제는 소수 여성의 문제가 아닌 정부가 마땅히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차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미군병사들의 전투력 상실을 최소화하면서 안전하게 성욕을 배출하게끔 성매매 여성들의 정기적인 성병검진을 실시했다. 그렇게 미군과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는 ‘철저히’ 정부주도하에 이뤄졌으며 이를 위해 여성들은 정부의 관리 및 규제의 대상이 됐다.  

또 정부는 보건소직원과 함께 미군 헌병이 여성들의 성병유무를 확인받은 보건증을 감독하도록 하고, 업소마다 자치회 감찰을 배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들을 칭송하던 ‘과거’는 온데간데없고 ‘현재’ 기지촌 여성노인들은 쪽방에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며 남은 삶을 지탱해오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노후대책도 전무한 상태다.

특히 기지촌 여성노인들의 65.5%는 기초생활대상자다. 월세와 공과금 등을 납부하고 나면 정부에서 지급된 생계지원비는 바닥이 나는 것. 이와 관련 한 기지촌 할머니는 “여기(기지촌)에 있는 노인들은 월세로 생계지원비의 대부분을 지출한다”며 “근데 그마저도 방에 창문이 없어 여름에는 숨 막히도록 덥고, 겨울에는 난방을 할 돈도 없어 차가운 냉골에서 지낸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그런데 미군기지 이전으로 계속해서 땅값이 올라 집 주인들이 새 건물을 지으려고 해서 쪽방에서마저 쫓겨날 판”이라고 덧붙였다.

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원장은 “정부 여러 기관을 찾아 기지촌 할머니들에 대한 주거대책 지원에 대한 말을 언급하면 ‘애국자로 칭송됐던 점은 인정하지만 혜택을 줄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현재로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며 “또 ‘기지촌 여성노인들이 현재 성매매를 하는 여성도 아니라 성매매방지법으로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고 전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거 기지촌 여성들은 ‘달러벌이 역군’으로 불리며 자신들의 생계는 물론 국가 경제발전에도 이바지했다. 그러나 여성들과 환락을 즐겼던 미군은 물론 우리 정부 역시 이들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군기지, 벤젠∙중금속 등 곳곳에 오염물질 가득

▲ 오염의 원인인 기름저장고.
‘미군이 지나간 자리’는 기지촌 여성들에게만 아픔으로 남겨진 게 아니다. 미군이 수십 년간 무상으로 사용해 온 미군기지 부지가 군사활동과 부주의한 환경관리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돼 있었던 것. 이로 인해 반환 미군비지의 환경문제가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됐다.

한국은 미국과 체결한 연합토지관리계획(LPP. 2002년 체결), 용산기지 이전협정(YRP. 2004년 체결) 등에 의해 미군이 점유해 온 상당수의 우리 땅을 반환받게 됐다. LPP는 2011년까지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미군기지와 훈련장을 통폐합, 한국측이 반환받는 대신 미국측에 새로운 기지부지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국방백서 2007년판에 따르면 이러한 LPP 협정에 따라 주한미군에 제공되는 공여지는 전국 7,440만평에서 2011년까지 2,515만평으로 대폭 감소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반환받는 부지는 여의도 면적의 58배가 넘는 규모다.

미군기지 반환은 3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7년에 반환된 전체 23개 기지 중 서울역 미군사무소를 제외한 22개 기지에서 TPH(총성유류탄화수소),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 혹은 중금속 등으로 인한 토양오염이 확인됐다.

석유류탄화수소 기준으로 토양환경법상 우려기준(500mg/kg)의 5~101배 초과했으며 총 오염면적을 기준으로 평균 40배 이상을 넘어섰다. 이 같은 토양토염의 대부분은 지상 및 지하 유류저장탱크 등의 누출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3개 기지 중 19개 기지에서 지하수 오염도 발견됐다. 16개 기지 지하수에서는 환경기준을 초과했으며 벤젠∙페놀과 발암 우려물질인 TCE까지 함유돼 것으로 밝혀졌다.

토양 치유비용에만 1,200억

 ▲ 미군기지 앞 오염된 토양에서 고약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미군은 정화비용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군이 오염시킨 부지를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정화해야할 형편인 것.

이에 우리정부는 18개 기지에 대한 정화사업을 2011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지금까지 반환된 23개 기지의 토양치유 비용에 약 1,2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오염된 지하수 정화비용까지 합하면 최소 2조 내지 15조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농촌공사를 대행사업자로 선정해 이달부터 본격적인 지하수 정화활동을 시작하고, 토양오염은 토양경작 및 저온열탈착, 토양세척공법 등을 이용해 정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공법들이 주어진 기간 내에 복원을 완료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추가적인 오염확산이 확인된 상황에서 초기의 비용과 기간으로 기술적 성공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강원대 지질학과 이진용 교수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토양과 지하수 오염복원 등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만을 앞세우고 있다”며 “미군기지 환경오염은 외교문제를 뛰어넘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피해까지 우려되는 강력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한미공조 웬 말, 굴욕이다”

그러나 미국측은 자국 전문가들의 주장을 내세우며 “한국의 현재 오염수준은 미국과 2001년 체결한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 명시된 ‘KISE(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측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이와 관련 이진용 교수는 “실제로 미국방부 정책입안자들은 미국환경법과 달리 의사결정자들이 최대한의 탄력성을 발휘하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한 KISE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런데 미국 환경청은 실제적 피해나 질병이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향후에라도 위해의 가능성이 있다면 ‘긴급하고 실질적인 위험’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이는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달 6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적용하고 있는 객관적인 오염상태인 ISE와 우리나라에 적용, 오염정화를 거부하고 있는 기준이 되고 있는 미군의 KISE와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공개하라”는 환경부의 요구를 보안검토 등의 이유로 거부했다.

반환미군기지 오염현황과 이를 둘러싼 정화문제에 앞서 더 큰 문제는 관련당국의 태도에 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 등 많은 시민단체들은 “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를 ‘한미공조’라는 국익을 위해 덮어둔다면 그것은 ‘공조’가 아니라 ‘굴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관련단국은 미군기지 오염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들 앞에 변명하기보다 사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라며 “그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류세나 기자<cream53@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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