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조합 결성해 200억원 차익낸 창투사 '황소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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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조합 결성해 200억원 차익낸 창투사 '황소 CEO'
  • 이광용 기자
  • 승인 2008.09.22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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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한 맥스창업투자 사장

          우직한 뚝심으로 글로벌 경영 선도
          충북 ‘미호 촌놈’서 30대에 정상올라
          오너와 '혈연'없이 초고속 출세가도
          신의로 다져진 휴먼 네트워크 강점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합리적인 뚝심.’
‘신의로 다진 휴먼 네트워크.’

성공의 원동력을 짐짓 떠올려보지만,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주)맥스창업투자 신용한(40) 사장. 그는 서른셋의 나이에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지주회사 CEO를 맡아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현재 (주)맥스창업투자 CEO로 뛰고 있다. 맥스창투는 제2의 벤처붐을 주도할 기업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역시, 주목을 끌만 했다. CEO를 맡은지 2년여 만에 그가 이른바 ‘건수’를 올린 것이다.

중견 창투사인 이 회사의 투자조합이 투자한지 한달여만에 200억원의 평가이익(9월 12일 종가 기준)을 거뒀다.

맥스창투는 맥스신재생에너지전문1호 투자조합을 결성해 에너지환경연구소에 103억원을 투자했다. 인수가는 주당 4만원에 총 25만주다.

에너지환경연구소는 코스닥상장사인 이노메탈로봇과 합병한다. 이노메탈은 지난 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감자와 합병을 승인했다. 합병계약에 따르면 맥스창투 투자조합의 이노메탈 수익률은 최근 코스닥 시황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도 원금 대비 200%에 달한다.

신 사장이 우회상장을 추진하는 회사에 투자함으로써 ‘대박의 꿈’을 현실로 이끈 셈이다. 최근엔 위기대처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위기가 오기 전에 플랜 B를 꺼내라’를 출간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Dream comes true’의 신화를 만들도록 이끌었을까.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의 핵심은 우선 어떻게 젊은 나이에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가이다.

그는 오너 2~3세가 아니다. 요즘 봇물처럼 밀려드는 해외 유학파 30대 CEO도 아니다. 나이가 말해주듯 여느 굴지의 CEO들처럼 해당 업종에서 수십년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신 사장은 요즘 30~40대 재계를 이끄는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정평있는 젊은 경영자 모임인 EO(Entrepreneur Organization)의 한국지부 ‘Chair’(사무총장)다. 2003년 세계경제포럼(WEF) 아시아지부가 선정한 차세대 아시아 리더의 한 사람으로 선정될 정도로 ‘공인인증’을 받은 CEO다.

그러나 ‘차세대 CEO' 신용한은 충북 청원의 한 시골마을 여염집 자식으로 ‘밑천’ 없이 컸다. 2남3녀 중 장남으로 지게를 지고 소꼴을 먹이며 유년시설을 여느 농촌의 소년처럼 보냈다.

 

그는 동네 언덕에 있던 시골집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호천과 미호평야를 보며 ‘언젠가는 큰 인물이 되겠다’는 야망을 키우며 어려웠던 유년기를 견뎠다. 20세기에나 가능할 법한 ‘소년의 초상’ 쯤으로 보면 되겠다.

신용한은 충북의 명문인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88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신용한은 당시 시대적 고뇌에 흔들리며 대학생활을 보냈고, 군에서는 사단장 부속실에 근무했다.

제대 후 학교에 돌아온 그는 최우등상을 수상하며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그동안 배운 이론적 지식을 기업실무에 직접 참여해 선물, 옵션 등 새로운 선진 재무와 금융 분야에 심취했는데,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법대 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 지주회사법 등 이른바 ‘경제법’을 전공했다. 특히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윤리, 기업의 경제·사회적 역할 등을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선진경영기법에 대한 이론과 실무를 쌓았다.

          재계 2,3세 경영모임 EO 사무총장
          한국이끌 차세대 리더로 자리매김
          강한 추진력-은근한 끈기로 무장
          “황소같은 '우직한 덕장' 되고싶다”

 이같은 과정이 ‘농촌소년’ 신용한을 현재의 위치에 오게 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른바 ‘연(緣)’이란 것이 그를 ‘공인인증 차세대 리더’로 견인한 측면도 있지만, 그 ‘기회’와 온몸으로 부닥치면서 오늘의 신용한을 있게 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다.

대학원 은사인 신형윤 연세대 교수와의 인연도 깊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상법 전공인 신 교수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이 기업인 신용한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그는 곧바로 동양도자기 경영·관리 컨설팅을 맡아 현장 수업에 들어갔다. 이어 현대자동차 인큐베이팅센터 경영·법률 컨설팅과 웹엔터테인먼트 경영기획팀장, IVN테크롤러지 경영기획이사를 거쳤다.

당시 그는 국내 재계 순위 30위권 안에 드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지분분할 및 경영컨설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재벌가 오너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서른하나의 나이, 2000년 신용한은 일찌감치 그의 잠재력을 높이 샀던 모 대기업에 낙점돼 소프트웨어 회사인 (주)모바일뮤턴트의 CEO로 데뷔했다.

모바일뮤턴트의 선장으로서 그는 당시 미국 매크로미디어사의 ‘플래시(Flash)’라는 소프트웨어를 기본으로 GPS, PDA, Phone, 셋톱박스 등의 하드웨어 디바이스를 탑재하는 컨텐츠를 개발하며 쾌속항해를 이어갔다. 

 

모바일뮤턴트는 플래시를 활용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콘텐츠를 양산해낼 수 있는 저작 도구를 만들어 2000년과 2001년 월드 플래시 페스티벌(World Flash Festival)에서 세계 ‘베스트 톱 5’에 선정될 정도록 탁월한 응용 기술력을 발휘했다.

신 사장은 “지금은 보편화 됐지만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분야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CEO 데뷔전은 성공적이었다. 2001년 봄, 그는 극동유화 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극동유화 그룹의 장홍선 회장과의 만남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극동유화그룹이 투자한 정보기술(IT)회사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평가 및 조정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90년대 말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장 회장의 눈에 그가 띈 것이다. 신세대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로 ‘신용한’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장 회장과의 인연으로 그는 2002년 극동유화 그룹 계열사인 ㈜아라넷 사장을 맡았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장 회장이 2002년 10월 사장 자리를 전격 제의, 이를 수락해 두 번째 CEO 경험을 했던 것이다.

‘아라넷’은 1999년 일기 시작한 IT 물결을 타고 극동유화그룹이 신사업 성장 동력의 일환으로 출범시킨 벤처기업이다. 당시 아라넷은 인터넷을 통한 논문·도서검색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였다.

신 사장은 아라넷을 그룹 IT 전문회사로 키워내 취임 6개월만에 20배의 매출 신장세를 달리게 했다. 그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신 사장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우암홀딩스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신 사장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며 “나이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사소한 부분까지 먼저 고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CEO로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3가지 가치를 꼽는다. 조직의 장기적 목표를 제시하는 ‘비전 메이커(Vision Maker)’, 설정한 비전을 조직원과 함께 공유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 ‘비전 셰어(Vision Share)’, 회사를 즐거운 일터로 만들고 결과를 같이 나누는 ‘머니 셰어(Money Share)’다.

신 사장은 2004년 (주)인크루트 사외이사를 거쳐 2006년 (주)맥스창업투자 사장으로 다시 시험대에 섰다.


맥스창투는 IT와 소프트웨어 제조,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발전 가능성이 큰 기업을 발굴 투자하는 회사다. ‘미녀는 괴로워’ 등의 히트작에 투자했고 2007년엔 민관합동 매칭펀드를 결성했다.

신 사장은 차세대 리더로서의 최고 덕목을 합리적 리더십과 올바른 인간 네트워크를 갖추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그같은 확신에 따라 사회활동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벤처기업협회 산하 ‘벤처리더스’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젊은 기업인들과 세미나, 포럼을 통한 교류와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학생운동 모임을 이끌어왔고, 2000년에는 연세벤처포럼이란 모임을 만들어 의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자랑스런 연세 법무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자 국제 CEO들의 모임도 주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성공한 한인 경제인들의 모임인 ‘세계한민족청년지도자네트워크’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 모임은 전 세계 35개국, 4700여명이 참여할 만큼 ‘CEO 파워’가 막강하다.

신 사장은 “이같은 모임에 정성을 쏟는 것은 각 분야에서 맹렬히 활동하는 경제인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류하면 더 큰 비즈니스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의 길지 않은 경험에서 닦아진 CEO상은 ‘황소’에 비유하면 어울릴 듯싶다. “은근과 끈기로 인내하면서 앞에서 강한 책임감과 추진력으로 쟁기를 끌고 나가는 황소 같은 덕장이 되고 싶다”고 그는 희망한다.

뚝심, 인내, 겸손, 노력, 신의, 네트워크…. 선친께서 애지중지 키우셨다는, 신 사장의 집무실에 걸린 사진 속 ‘황소’의 표정은 그런 면에서 우직한 덕장이길 바라는 그의 신념과 닮았다.
이광용 기자/skynpine@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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