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 '규제'를 홍보에 악용하는 막장시대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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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 '규제'를 홍보에 악용하는 막장시대 열었다
  • 박동준 기자
  • 승인 2012.04.0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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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약품 대중광고 금지 위반 재범…원흉은 이인석 신임 대표

▲ 지난 2월1일 이인석 SK케미칼 대표이사가(사진 우) 모델 겸 배우 이파니씨를 '엠빅스S'의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매일일보 김경탁·박동준 기자] 국내 기업들의 덩치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반면 규제·감독 규정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감독당국이 허수아비 취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가운데 이번에는 아예 규제 자체를 자신들의 광고마케팅 들러리로 사용한 경우가 나타났다.

지난 2009년 발기부전 치료제 ‘엠빅스’에 대해 전문의약품 광고제한 규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바 있는 SK케미칼이 ‘엠빅스’의 후속제품인 ‘엠빅스S’에 대해서도 동일한 제재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방식과 수준, 의도가 모두 심히 고약하다. 

‘발기부전 3강’ 틈바구니에서 신흥국으로 영토 확장 꾀하던 엠빅스

최강자 ‘비아그라 연합국’ 형성 전에 독보적 위치 선점 목적 의심돼

발기부전치료제와 같은 전문의약품은 일반인 대상으로 광고가 금지돼 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의학·약학에 관한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하거나 학술적 성격을 지닌 매체 등을 이용할 때에만 전문의약품의 광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문의약품의 일반광고가 허용될 경우 전문가의 처방없이 일반인들의 오·남용이 우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이 2009년 당시 규제받았던 이유는 모 언론사에 협찬하는 방식으로 ‘기사’로 포장된 광고를 게재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당시보다 더 노골적으로 연예인 홍보대사를 위촉하고 언론 프로모션까지 진행했다.

홍보대사 이파니 위촉

지난 2월1일 오전, SK케미칼은 성인연극 활동과 섹시화보 등으로 주목을 끌어온 모델 겸 배우 이파니씨를 필름형 발기부전치료제 엠빅스S의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제품관련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파니는 성기능을 강화해준다는 소위 ‘엠빅스S 건강체조’를 선보이면서 제품에 대해 홍보했고, 곧바로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SK케미칼은 엠빅스S의 효능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했다.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에는 이파니와 SK케미칼 이인석 대표이사가 악수하는 사진을 촬영해 이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각 매체에 배포됐다.

성인문화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연예인이 발기부전치료제 홍보모델로 위촉돼 언론프로모션까지 진행했다는 소식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 수밖에 없는 사안인 만큼 의학관련 전문지뿐만 아니라 일반 매체들도 다수가 위촉식 및 간담회에 참석했고,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기사로 위장된 협찬 방식의 광고보다 훨씬 노골적이면서 사회적 파급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만큼 즉각적인 제재가 이뤄질 사안이었다.

느림보 식약청

하지만 이 사건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제재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무려 두 달이나 뒤인 3월 말이었다.

프로모션 이튿날 이 사안에 대해 약사감시에 착수한 식약청은 3월27일이 되어서야 점검을 끝냈고, 법적검토를 마친 결과 이번 SK케미칼 사안에 대해 ‘전문의약품 광고’로 결정을 내리고 행정처분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청 관계자는 5일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주 화요일 엠빅스S 홍보대사 위촉을 ‘전문의약품 광고’로 결론내고 이에 대해 행정처분 과정을 밟고 있다”며 “업체에 사전처분통지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청의 조치에 대해 SK케미칼 관계자는 “아직 식약청으로부터 사전통지처분은 못 받은 상태”라며 “기자간담회와 보도자료만 작성한 것일뿐 의도적인 광고효과를 노린 것은 아니다”고 강변했다.

이인석…원흉?

이 관계자는 특히 이번 홍보대사 위촉에 관한 과정을 ‘SK케미칼 이인석 대표이사가 최종 승인했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고 주관했으니 사전에 이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답했다.

이인석 대표는 올해 3월27일 대표이사로 선임되기 전까지 SK케미칼 의약사업부문장과 LS(생명과학)마케팅 본부장을 지낸 인물로, 2009년 당시 협찬기사가 나갔던 과정과 이후 식약청의 행정처분 경과 그리고 일련의 사안으로 SK케미칼이 얻은 득실에 대해 정통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2009년 당시 식약청 제재에 따른 피해와 이후 매출 변화 등을 따져봤을 때 ‘득’이 ‘실’보다 훨씬 컸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번 홍보모델 위촉 같은 노골적인 불법 대중마케팅 행위를 집행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어쩌면 이인석 대표가 회사에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이렇게 사회적 물의와 위법행위도 불사하는 추진력(?)을 가졌다는 점이 그를 대표이사 승진 발탁하도록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변수였을 수 있어 보인다.

발기부전 시장 상황

현재 국내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은 외산인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그리고 동아제약의 자이데나가 3강 체제를 오랜 기간 유지해왔으며, 여기에 SK의 엠빅스와 JW중외제약의 제피드 등이 도전장을 내는 구조였는데 여기에 오는 5월 비아그라 특허 만료에 따라 비아그라를 카피한 다른 제약사들의 시장참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즉 3강의 틈바구니에서 신흥국으로서 영토확장을 꾀하던 엠빅스 입장에서 최강자인 비아그라가 ‘카피약 연합국’을 형성하기 전에 자신 만의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해둘 필요가 있다는 ‘범행동기’가 충분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범행동기를 실제 범행으로 이어지게 한 배경에는 식약청의 관련 제재가 터무니없이 약하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SK케미칼은 지난 2009년에도 ‘엠빅스’에 대해 같은 혐의로 식약청으로부터 판매정지 6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5000만원의 과징금으로 대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규제 강화했다지만…

이와 관련해 식약청은 지난해 5월 일부 업체들이 판매정지란 중징계를 과징금으로 대처하는 방안을 악용한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예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한 바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예규가 개정되기 전에는 업체에서 과징금 대처를 요청하면 해주는 방안으로 행정처분이 진행됐지만 개정 이후로는 ‘판매정지가 될 시 국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제품’ 이거나 ‘업체의 매출액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제품이 아닌 한 과징금 대처를 거의 안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식약청의 이러한 예규 개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2009년 당시 ‘판매금지 6개월’이었던 관련 처벌 조항이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1차 적발시 판매금지 3개월’로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판매금지 3개월’이라는 처분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SK케미칼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식약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는 소식 자체가 언론지상에 보도되면, 이를 통해 이파니와 엠빅스S의 관계를 한 번 더 부각시키는 ‘노이즈마케팅’ 효과가 기대된다.

더욱이 앞으로 대중 앞에 선정적 노출이 계속될 ‘문제적 연예인 이파니’와 ‘발기부전치료제 엠빅스’ 사이에 연상효과를 만드는데 성공한 SK케미칼 입장에선 3개월 판매금지에 따른 영업손실보다 훨씬 큰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일련의 사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국가 감독기관의 허술한 규제가 기업들에게 우습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넘어 오히려 마케팅을 위한 들러리로 사용되는 기막힌 시대를 SK케미칼이 열어젖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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