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터넷은행, 이럴거면 그러지말지(Feat.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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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터넷은행, 이럴거면 그러지말지(Feat. KT)
  • 박한나 기자
  • 승인 2019.04.23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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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한나 기자] “궁금해서 잠이 안 와 / 그때 왜 그랬어 / 구차해도 묻고 싶어 / 그때 난 뭐였어 / 나나나나 나나 나나 / 나만 애 탄거니 / 나나나나 나나 나나 / 난 진심인데 넌 / 그랬구나 그랬어 / 좋았는데 넌 아니었나 봐 / 그랬구나 그때 넌 / 그런 줄 모르고 나 혼자”

KT의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중단 사태를 보면 새삼 떠오르는 노래 가사가 아닐 수 없다. KT는 2015년 IT와 금융을 융합해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금융당국의 포부를 믿고 인터넷은행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KT는 최근 입찰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어 금융위원회로부터 심사 중단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KT가 인터넷사업을 시작할 때는 이 같은 결과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10월 KT가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접수 당시에는 은행업 시행령에 ‘불공정거래행위’만 대주주 결격요건으로 특정돼 있었다. ICT기업들이 공정거래법 중에서도 불공정거래행위만 하지 않으면 향후 인터넷은행의 대주주가 되는데 장애가 없었다.

실제 2015년 7월 31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심사 관련 Q&A 자료’를 보면 ‘독점규제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금지규정을 위반한 행위에는 부당공동행위(담합), 기업결합신고위반 등 독점거래법상 다른 규정을 위반한 경우는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같은 법 규정으로 1기 인터넷은행들은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적 흐름을 읽고 인터넷은행의 인가를 신청했고, 금융위는 당연히 인가를 허가했다. KT는 최대 34% 지분을 확보해 케이뱅크의 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야심에 찬 계획에 설레었으리라.

그런데 법이 바뀌었다. 법이 바뀌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6년 8월 은행법 시행령으로 ‘불공정거래행위’에 국한된 결격 요건이 ‘공정거래법’으로 확대됐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이를 그대로 적용해 통과됐다. 특례법은 산업자본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격요건이 공정거래법 자체로 확대되면서 ICT기업들이 흔히 하는 ‘담합(부당공동행위)’ 위반까지 포함된 것이다. 이를 미리 알았다면 ICT기업들은 인터넷은행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KT와 카카오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KT는 지하철 영상광고 입찰 담합으로 벌금 7000만원을 받았으며, 카카오도 음원 담합으로 1억원의 벌금을 받은 전력이 있고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계열사 누락 혐의로 재판 중이다.

특례법 통과 때도 ‘공정거래법’이 결격요건에 포함되면 ICT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는 해당 산업 분야의 고유 특성이 반영된 위반행위기 때문에 금융의 잣대를 산업에 적용하면 ICT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다. 이런 비판대로 2기 인터넷은행은 네이버 등 대형 ICT기업이 불참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KT의 대주주 심사가 중단된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케이뱅크를 이용하는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다. KT로부터 유상증자에 실패한 케이뱅크는 출범 2년 만에 14번째 대출 중단 사태를 맞았다. 케이뱅크에 투자한 주주들은 이번 당국의 결정이 신뢰보호 원칙을 훼손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은 케이뱅크주주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소비자의 편익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정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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