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산 나눠먹기 우려되는 예타 제도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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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예산 나눠먹기 우려되는 예타 제도 개편
  • 최은서 기자
  • 승인 2019.04.0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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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최은서 기자] 정부가 24조1000억원이 투입될 23개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선심성 사업’이란 비판을 받은지 불과 2개월여 만에 예타 문턱을 크게 낮춘 개편안을 내놓아 빈축을 샀다.

이번 개편안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평가방식을 달리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수도권은 감점으로 작용했던 지역균형발전 평가 부문이 사라지고 경제성을 중심으로 평가하며 비수도권은 경제성 평가를 5%포인트 줄이고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5%포인트 높이기로 해 예타 통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조사기간도 평균 19개월에서 1년 이내로 단축됐다. 특히 비수도권 사업에 균형발전 가중치를 두기로 해 광역시 추진 사업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예타는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해 미리 사업성을 따져보는 심사제도로 그동안 ‘재정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왔다. 1999년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를 대상으로 최초로 도입된 이래 20년 간 나라 곳간을 지키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인구 부족으로 수요가 수도권에 비해 적은 지방사업은 예타통과가 어려웠던터라 합리적인 선에서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이번 개편안에 대해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지역 간 형평성을 제고하고 비수도권 투자를 유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나, 수도권과 지방 모두 예타 문턱을 낮춰준 셈이어서 각 지역별로 선심성 부실 대형 사업이 난립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말 발표된 23개 예타 면제 대상 사업만 보더라도 이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면제 대상 23개 사업 중에는 기존 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탈락한 사업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이 낮은 사업에도 예타 면제라는 ‘면죄부’를 주게 됨에 따라 향후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우려도 크다. 과거 예타를 통과한 사업들도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던 전례가 있고, 면제 대상 사업 중에는 각 지역 숙원 사업이나 지자체장의 핵심 공약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같은 예타 면제에 이은 예타 문턱 낮추기는 재정 내실화는커녕 뒷걸음질치게 해 미래세대의 부담만 키울 공산이 높다. 더욱이 기획재정부 내에 위원회를 설치해 최종결론을 내리게 한 것도 문제이다.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더욱 커져서다.

정부의 설명처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20년간 예타의 본래 취지를 흐리는 것은 안될 일이다. 섣부른 선택으로 예타라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유명무실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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