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문화 반영 못한 ‘전자투표제’는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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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자문화 반영 못한 ‘전자투표제’는 ‘무용지물’
  • 홍석경 기자
  • 승인 2019.03.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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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올해도 코스닥 상장사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감사선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속출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정기 주총을 연 12월 결산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 977곳 중 6.7%인 65곳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했다.

지난해 정기 주총 시즌에는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 비율이 2.9%(전체 1933개 중 56개)로 올해 부결 비율은 작년의 약 2.3배에 달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올해 주총에서 1928개 상장사 중 8.2%인 154개사가 정족수 미달로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의결정족수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찬성과 출석 주식 수 과반의 찬성으로 규정돼있는 상황에서 감사선임 안건은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지분 중 3%만 의결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총에 불참하는 주주 의결권을 예탁결제원이 대신 행사하는 섀도보팅제가 있어 별문제가 없었지만 2017년 말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지난해 주총부터 소액주주가 많은 상장기업을 중심으로 의결정족수 부족 문제가 큰 고민거리가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과 민간기관인 미래에셋대우까지 힘을 합쳐 온라인으로 주총에 참여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전자투표 플랫폼을 제공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이를 감안해 의결권 확보가 어려워 감사인 선임을 하지 못하는 경우 예외조항을 적용하고 있지만, 사후약방문식이라 상장사의 불안감은 지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인 주주들의 주총 참여가 낮은 것은 제도적인 문제보다는 우리나라 주식투자자들의 근본적인 투자문화에서 찾아 봐야 한다. 대게 금융투자업계에선 우리나라 개인 주주들이 주주로서의 ‘권리’보다는 주식투자를 통한 ‘이익’확보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는 주총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것으로 증명됐다.

이같은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주식투자의 목적은 개개인 별로 다를 수 있고, 투자의 목적은 이익실현이라는 기본적인 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 모두가 의결권 행사에 나선다면, 기업들 자체도 주요 안건에 있어 주주친화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또 감사인을 선임하지 못해 상장사들이 안절부절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플랫폼에 수요가 있으려면 그 플랫폼을 이용하려면 문화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 섀도보팅제 폐지 이후 전자투표의 취지는 정말 아름답다. 소액주주도 주총에 쉽게 참여해 기업의 주요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견을 행사한다.

하지만 섀도보팅제가 폐지되고 나아진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개인 주주는 여전히 주총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예탁원은 현재 전자투표 플랫폼 제공으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상장사는 의결권 부족으로 감사인 선임을 못해 관리종목에 놓일 처지다.

이렇게 사회적 비용만 쌓이면 누적된 손실에 대해선 누가 책임질 것인지 생각은 해봤나. 주주문화는 주주 스스로 바꾸는 것이지, 국가가 나선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주주 문화가 충분히 성숙치 못한 우리나라에서 섀도보팅제 폐지는 너무 이르다. 이쯤 되면 섀도보팅제 부활도 강력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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