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적격자라더니 최정호에 지역구 민원 넣는 의원들
상태바
[기자수첩] 부적격자라더니 최정호에 지역구 민원 넣는 의원들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9.03.27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후보자들 중 첫타자로 나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는 자정을 앞둔 밤 11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국토부 장관 후보는  다주택 보유, 부동산 투기, 편법증여 등 각종 의혹에 휩싸여 여당 의원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은 기세 좋게 최 후보자의 부동산 의혹을 질타하며 ‘투기전문가’ ‘부적격자’라는 호통을 이어갔다. 최 후보자는 이러한 자신의 의혹에 수차례 “죄송하다” “송구하다”는 대답만을 이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지고 방송사 생중계 카메라도 줄어들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구 현안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지역구 교통 인프라 확대에 관한 사회간접자본(SOC) 질의였다. 사실 질의라기보다는 질의를 빙자한 ‘SOC 조기추진 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야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지역구와 관련된 ‘SR 전라선 투입’ ‘김포한강선’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등을 언급하며 최 후보자의 긍정적 답변을 요구했다. 인사검증보다는 총선을 앞둔 ‘표심챙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사퇴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의했던 의원이 오후가 돼서는 “관심 가져달라. 관심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이거 해달라”고 말하는 모습은 마치 최 후보자가 이미 장관이 된 듯한 분위기였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토위 위원들이 요구했던 서면질의서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약 1180쪽에 달하는 답변서에는 국토부 장관의 자질, 향후 부동산 정책 방향, 9·13 대책의 성과 등을 묻는 정책질의도 다수였지만, GTX·급행버스 조기 확충 등 지역구 챙기기를 위한 질문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청문회 현장에서는 보다가 너무했는지 민원성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긴했다. 이은권 한국당 의원은 “지금 청문회를 하는건지 정책질의를 하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우리 지역 민원을 부탁해서 ‘장관되면 이렇게 해주십시오’ 이건 아니다”라며 위원장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말 그대로 장관의 자격이 없다며 내내 ‘때리기’를 이어왔으면서 카메라가 꺼지자 “심하게 질문해서 미안한데, 장관이 되면”이라는 말을 넣으며 도리어 민원사업을 부탁하는 모양새인 것이다.

청문회가 끝나면 국토위 소속 의원실에서는 ‘후보자 000발언 이끌어내’ 혹은 ‘00 적극 검토 약속받아’라는 보도자료를 보낸다. 후보자에게 지역 숙원사업과 관련 “잘 검토해보겠다. 조기 확충하겠다”는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내 이를 다시 지역에 홍보하는 셈이다.

이렇듯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 시작전부터 ‘송곳 검증’을 예고해왔지만 결국에는 여야를 막론한 ‘민원 잔치’로 끝난 모습이다. 사전에는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국회에서 검증하는 제도’라고 정의됐다. 그렇지만 지역구 챙기기를 위한 각종 민원에 자질을 검증해야 할 후보자가 아닌 ‘신임 장관’을 대면하는 자리인가 하는 의아함이 들 뿐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