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관행과 적폐 사이에서 국민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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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관행과 적폐 사이에서 국민은 혼란스럽다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9.03.26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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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영장을 심사한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 외에 두 가지를 더 들었다.

먼저 사표를 요구하고 표적 감사를 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추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는 청와대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최순실이라는 만병통치약의 약발이 남았다고 치고 이 대목은 넘어간다고 하자.

해당 판사는 채용 비리 혐의와 관련해서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에 대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된 논란이다. 각 분야의 공공기관 요직에 전문성 없고 자격 없는 인사들이 떨어져 내리면 그 폐해가 어떨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모든 정권이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기관 요직을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여겨왔다. 게다가 공공기관장은 엄격한 인사검증도 받지 않고 오르는 자리다. 혹독한 인사청문회가 없으니 ‘장관 자리보다 공공기관장이 더 낫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마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줬으니 앞으로 목불인견 수준의 낙하산 인사가 만연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정권 차원의 낙하산 인사가 관행이면 퇴직관료의 관련 공기관 취업 역시 관행이다. 그토록 비판을 받아온 ‘관피아’에 대해서는 이제 무슨 명목으로 단죄해야 하나. 중앙부처 뿐인가. 각 지자체의 낙하산 인사도 이제 면죄부를 얻게 됐다. 대한민국 전체가 낙하산 천지가 될 판이라는 걱정이 기우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 인사들은 이런 걱정은 하지 않나보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 전 장관 구속영장 판결을 앞두고 ‘지난 정부에서는 더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낫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며 검찰과 언론을 맹비난했다. 이쯤 되면 ‘촛불정권’이니 ‘적폐청산’이니 하는 간판은 내려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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