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으름이 만든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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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게으름이 만든 시장
  • 신승엽 기자
  • 승인 2019.03.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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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신승엽 기자] ‘게으름’은 통상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게으름은 부정적 이미지와 달리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맡아왔다.

국내 렌털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렌털 서비스는 제품을 할부 개념으로 구매한 뒤 정기적인 방문 점검을 통해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수고를 덜은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정수기를 렌털 구매할 경우 일정기간 사용 가능한 필터를 서비스 직원이 방문해 교체해준다. 이를 통해 직접관리를 귀찮은 작업이라고 판단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이끌어낸다.

국내 렌털 시장은 게으름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KT경영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생활가전 렌털 시장은 지난 2016년 5조50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7조6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오는 2020년 10조7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조사됐다.

코웨이와 쿠쿠 등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렌털 시장 확대는 대기업의 참전까지 이끌어 냈다. SK네트웍스는 지난 2016년 동양매직을 인수하면서 시장에 뛰어들었고, LG전자는 자체 서비스 조직을 설립해 렌털 사업을 개시한 바 있다. 게으름이 부른 시장 확대는 대기업도 진출할 만큼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렌털 시장 외에 O2O 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테리어 교체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자재나 시공 사례 등을 살펴보는 것이 주류였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O2O 인테리어 중개 서비스의 경우 온라인에서 견적을 낼 뿐 아니라 시공 후 모습까지 확인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통계청 ‘2019년 1월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인테리어 주요 품목으로 분류되는 가구와 생활용품 거래액은 같은 기간 2747억원, 80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각각 8.7%, 13%씩 늘어난 수치다.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할 필요 없이 집에서도 자신의 공간을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배달앱도 게으름이 만들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통상 배달은 가게에 직접 전화한 뒤 자신의 집 주소를 밝히고, 배달원에게 금액을 지불하는 구조였다. 이와 달리 배달앱이 만든 생태계는 주문부터 결제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해결 가능하고 물품수령만 직접 나선다는 차별점을 가졌다. 

게으름이 만든 시장들은 편의성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추세다.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게으름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 생태계에 변화를 줄 뿐 아니라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는 게으름은 언제나 환영이다.

담당업무 : 생활가전, 건자재, 폐기물,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좌우명 : 합리적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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