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국 경제와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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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국 경제와 춘래불사춘
  • 이근형 기자
  • 승인 2019.03.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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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겨우내 거실에 들여놨던 화분을 베란다로 내놨다. 매년 봄에 하는 일이다. 따뜻한 거실에서 겨울을 난 식물들에게 햇볕도 쬐이고 줄였던 물도 흠뻑 줬다. 머잖아 꽃을 피울 것이다. 게 중에는 스무 해 넘게 같은 일을 겪은 녀석들도 있다.

봄이 왔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지난 여름이 너무 길었던 영향인지 겨울이 더 매섭고 길게 느껴진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원리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수출이 3개월째 뒷걸음쳤다. 작년 12월 1.2%, 올해 1월 5.8%에 이어 2월에도 11.1% 줄었다. 2016년 7월 이후 30개월 만이다. 내수가 시원찮은 판에 수출마저 주춤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수출에서 20%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1등 품목 반도체 하락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수출은 가격하락과 수요 부진이 겹치면서 작년 4분기부터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월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분의3 수준으로 축소했다. 반도체와 함께 석유화학, 석유제품, 선박 등 주력 수출품 대부분이 일제히 하락했다.

중국 경제의 위축도 수출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수출이 17.4%나 감소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4개월 연속 대중국 수출이 감소했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중요한 교역국이다.

수출 감소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실적도 일제히 악화했다. 작년 4분기 기업 실적은 수년 내 가장 좋지 않았다. 기업들이 내놓은 지난해 4분기 성적표는 대부분 양이나 가다. 최근 3년 간 ‘잘 나갔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곡선도 꺾였다. 올 1~2월 기업들의 경영상황을 보면 작년 4분기 실적보다도 더 좋지 않다. 봄은 왔지만 기업들의 겨울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이 움츠리고 있다. 온기가 빠져 나갈까 두꺼운 외투 깃을 꽉 여미었다. 거북처럼 목도 최대한 가슴팍으로 밀어 넣었다. 기업들은 여전히 소한·대한 추위의 한 가운데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겨울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여파로 세계 경제 회복도 더뎌지고 있다. 산업구조의 혁신이 필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춘 체질 개선은 거북이 걸음이다. 겨울을 이겨낼 노력도 봄을 맞이할 채비도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간 바닥을 드러낼 곳간에 쌓아둔 볏섬만 세고 있다.

자연은 때가 되면 계절을 바꾼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기업이 스스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투자해야 한다. 때론 모험도 필요하다.

최근 통신 업체들이 케이블TV 업체를 인수해 활로를 모색하는 노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SK텔레콤은 티브로드를, LG유플러스는 CJ헬로를 인수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인터넷콘텐츠 시장의 지배자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맞서려는 몸부림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는 것도 생존을 위한 도전이다.

안팎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 한국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하다.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다. 그렇다고 멈춰서면 더 악화할 뿐이다. 한국 산업은 이미 오래 전에 성장한계에 봉착했다. 반도체 등 일부 제품이 호황으로 잘 나가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켰을 뿐이다.

아직 기회가 있다. 스스로 바뀌는 계절과 달리 경제는 도전하는 자에게만 기회를 준다. 곳간 가득 쌓은 볏섬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낸다. 봄은 준비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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