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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과장된 공포와 비교의 함정

[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공포에서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훈족이 흑해를 넘자 겁에 질린 게르만족들은 도미노처럼 서쪽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서로마제국은 붕괴됐다.

10만도 채 안되는 칭기즈칸의 몽고전사들이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힘 역시 공포다. 몽고인들은 저항한 점령지의 사람은 물론 가축까지 죽이는 공포 전술로 대부분 지역이 스스로 항복하게 했다.

공포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인간이 심리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적당한 공포는 위기에 대비하게 한다. 반면 과도한 공포는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한국 경제 위기론이 연초부터 확산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끈 수출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다. 한국 경제가 내일이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이다.

실제로 최근 지표들을 보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수출은 두 달 연속 지난해 같은 달보다 줄었다. 주력 제품인 반도체의 수출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비교의 함정이다. 최근 1년간 기록만 보면 분명히 나쁘지만 이를 2년으로만 확장해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 1월 수출은 작년 1월에 비해 5.8% 감소했지만 작년 1월 수출이 역대 최고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쁜 성적표가 아니다. 수출 호조기로 불리던 2017년 1월에 비해 오히려 60억달러 늘었다. 반도체 수출도 마찬가지다. 1월 반도체 수출은 7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 감소했다. 이를 2017년 1월 64억달러와 비교하면 10억달러 더 많다. 2017년 1월은 반도체 수출이 당시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시점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수출은 계속 성장했다. 20개월 넘게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고, 사상 최고 행진을 했다. 워낙 고속으로 질주하다보니 속도가 늦춰진 것뿐인데 후진하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생긴 셈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만 봐도 그렇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59조원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였던 2017년 53조원을 뛰어넘었다. 2016년 29조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2년 새 두 배 성장했다. 그러나 4분기 분기 영업이익이 11조원을 기록하면서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2년 전에 비교하면 여전히 탄탄한 실적인데도 말이다.

기업은 이윤창출과 성장이 지상과제다.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부진하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위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저효과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이 고수익과 고성장을 거듭할 수는 없다.

현재 경제 상황이 이전보다 좋지 않은 점은 분명하다. 위기라는 평가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 과장된 공포가 초래한 결과를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봐왔다. 올바르지 못한 상황 분석은 잘못된 처방을 낳는다.

우리 경제는 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썩은 곳은 도려내고 덧난 상처는 치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철한 원인 분석이 먼저다. 낙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지만,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168명의 스페인군은 8만 호위병에 둘러싸인 잉카제국 마지막 왕 아타우알파를 생포했다. 이듬해 ‘황금제국’ 잉카는 멸망했다. 인구 600만명에 달하는 남미 최강국이 불과 100여명에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총과 말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과장된’ 공포가 원인이었다.

이근형 기자  rilla31@m-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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