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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넷플릭스의 공습과 합산규제의 부활

[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1592년 임진왜란 초기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일본에 당했다. 20여일 만에 한양이 함락됐다. 보병이 주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당시 임금 선조는 도망치기에 바빴고,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경복궁이 불에 탔다.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의 활약, 명의 원군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선이 전쟁 초기 무력했던 것은 임금의 무능과 지배층의 분열이다. 조선의 지배세력인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는 데만 혈안이었다.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려 무엇 하나 결정할 수 없는 혼돈의 시기였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수차례 침략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비도 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 미디어 시장은 임란 직전 상황과 다를 바 없다. 글로벌 거대 콘텐츠 공룡이 몰려오는데, 견제하고 분열하기에만 급급하다.

한국 미디어 시장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전통 방송 시장이 무너지고 인터넷동영상 시장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방송매체 이용행태를 보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42.7%에 달했다. 이 추세라면 빠르면 올해 50%를 넘길 것이 확실하다. OTT의 업체별 이용률을 보면 유튜브가 38.4%로 1위이고, 페이스북이 11.5%로 2위다. 해외 업체들의 점유율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해외 콘텐츠 공룡들이 공습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국내 사용자는 100만명에 육박한다. 유튜브의 월간 이용자수는 2500만명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들도 이들의 공세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자 국내 통신방송 사업자들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SK텔레콤과 방송3사가 OTT 서비스를 통합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덩치를 키워 글로벌 미디어 공룡에 대적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시도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런 국내 사업자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제동은 거는 것은 오히려 우리 정치권이다. 국회는 최근 지난해 일몰된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합산규제는 IPTV나 위성방송,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33.33% 밑으로 제한한 법이다. 방송의 공공성과 여론의 다양성 확보를 명분으로 2015년 3년 한시로 도입됐고, 작년 6월 수명을 다하고 일몰됐다.

이 규제는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용도 폐기된 상태다. 이 카드를 다시 꺼내든 명분은 여론의 다양성 확보다. 그러나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여론을 챙기려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들도 뒤에 존재한다.

미디어 시장은 이미 달라졌다. 인터넷과 동영상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유료방송의 독과점 문제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이미 우스운 일이 됐다. 덩치를 키워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막강한 자본을 갖춘 미디어 공룡 앞에서 미디어 자주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디즈니와 폭스의 합병 등 세계 미디어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에 맞서기 위한 선택이다. 이 상황에서 거꾸로 우리는 합산규제와 같은 구시대 유물의 부활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OTT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지금 같다면 한국은 해외 사업자들의 문화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임란을 앞두고 분열했던 조선 사림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이근형 기자  rilla31@m-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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