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신세로 확실히 전락한 노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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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신세로 확실히 전락한 노동계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8.01.12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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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명박 “비정규직 써야”…잇따른 친기업적 행보에 노동계 강력 반발

▲ 중소기업인들로부터 축하받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매일일보닷컴]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의 기류가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심상찮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 ‘친기업’ 정책 방향을 쏟아내는 반면, 노동계의 이해와 요구에 대해선 사실상 거의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의 그간 우려했던 대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당선 전과 그 후가 180도 달라져 빈축을 사고 있다.

이 당선자는 대선 전 각종 토론회에 참석, “비정규직 문제는 정권교체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해왔고 유권자들이 있는 노동현장을 찾아 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같은 입장을 강조했으나, 정작 당선이 된 뒤 한국노총과의 연대는 커녕, 친기업적 행보, 심지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나몰라라~’하는 등 ‘甘呑苦吐(감탄고토)’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 문제’다. 차기 정부 최대 과제라 할 수 있는 ‘경제 살리기’의 최대 복병은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로 이는 관련법 개정 요구를 둘러싸고 노동계와 업계, 정부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까닭에, 사실 인수위 측도 구체적인 논의를 피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이 당선자는 11일 오후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국상공의회장단 신년인사회에서 “강제로 정규직을 쓰라고 하면 쓰겠나. (기업체도) 경제가 좋아지면 정규직을 뽑아서 쓸 것”이라면서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참 많은데 기업이 수지가 맞지 않으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고 말해, 기업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심지어 이 당선자는 “새로운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정부가 창출하려고 공무원 수만 자꾸 늘리면 간섭하게 된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일자리는 여러분이 만들어야 한다”며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파격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자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차기 정부 노동정책의 방향을 조심스레 지켜봤던 노동계는 ‘기업 친화적 행보의 일환’이라며 당선자의 노동정책 지향점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로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인 셈.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권, 행동권 등에 대해서 (이당선인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면서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한다는 노동착취에 기반한 잘못된 관점이 드러난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이 당선자의 이 같은 노동정책 ‘우향우’는 비단 ‘비정규직 문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노동계 현안 문제들과 골고루 연관돼 있어 노동계의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잇단 친기업 행보에 민주노총은 단단히 화가 난 상태다. 이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최근 제안한 ‘노ㆍ사ㆍ민ㆍ정 대타협 기구’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인수위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이고 △고용보험료를 감면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면 법 자체를 아예 바꿔야한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올 상반기 총력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실천 여부가 주목된다.

한국노총도 마찬가지. 지난 대선 때 노동계와 조합원의 반발에도 불구 이명박 당선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어용노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노총 지도부는 “약속했던 정책연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등 새 정부의 친기업적 행보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만 힘을 실어주면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경련 눈치를 보느라 노동계와 진실된 대화협상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만나면서도 정작 지지를 선언한 한국노총을 외면하고 있는 것, 쉽게 말해 ‘팽’ 당한 것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셈이지만, 발언의 뉘앙스는 사실상 인수위 측과의 결별에 무게를 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노동계 한 전문가는 “노동계의 불평ㆍ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어떤 면으로 보나 이명박 당선자가 자초한 것”이라면서 “인수위 내에 노동계 인사가 없다는 점, 재계는 접촉하면서 노동계와 접촉은 단절하고 있다는 점 등 아무리 ‘경제살리기’라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친기업적 행보에 매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당선자는 그러나 노동계의 이 같은 지적 및 반발에도 불구, 자신의 행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향후 정부와 노동계 간의 한판 대충돌이 예상된다.

이 당선자는 11일 대한상의를 방문, 경제인들과 간담회에서 “맞다, (나는) 친기업적이다. 아니다라고 얘기하진 않는다”라면서 “대기업·중견기업·소상공인이 모두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앞으로도 ‘친기업인’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행보를 반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노동계의 입장에서 더욱 답답한 일은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노동부마저 이명박 당선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이달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경영계가 제기해 온 비정규직법 개정 요구 내용들을 그대로 업무보고 자료에 담는 등 당선자의 ‘친기업 정책’에 대한 ‘눈치보기’를 해, 오히려 인수위 측을 당황케 했다.

노동부 측은 이에 대해 “그동안 나온 의견들을 검토할 대상으로 모두 올린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노동계는 “새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인수위에 아첨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얄팍한 처사”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노동계는 지난 5년 간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한 목소리로 ‘친기업 정권’ ‘노동탄압 정권’이라며 쉴새 없이 반발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각 사업장 별로 투쟁을 벌여왔고 앞으로의 5년을 기대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외면하고 ‘친노동자 후보인’ 권영길을 또다시 선택했고, 한국노총은 뭇매를 맞으면서까지 이례적으로 ‘친기업적인’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이른바 ‘파격행보’를 보이면서 뭔가 다른 기대심리를 내비쳤다. ‘노동계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면서.

한노총 마저 노동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마당에, 이제 와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사업장 별로의 구조조정 철회, 해고자 복직, 근로문제 등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노동현장의 외침이 만약 옳다면, 기업주가 노조 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때는 파업을 감행할 수도 있다. 

다만 노동계는 좀 더 멀리 보는 노력, 그러니까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주고 주체적으로 싸울 수 있는 자신들의 대변자를 지지했어야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찾아 또는 서로의 삶을 찾아 각개전투 하는 바람에, 향후 5년 간 상대를 또다시 공격하며 상처를 받는 일만 남았다.

이명박 당선자는 ‘경제’에 올인했다. 기업은 ‘싱글벙글’하고 있지만 노동현장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현장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데 각 현장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구심점을 잃었고, 한국노총은 배신을 당했다. 노동계는 이명박 차기 정부에서 현 노무현 정부 그 이상으로 확실하게 ‘찬밥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자 등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확실컨데 차기 정부에서 힘있고 가진자들에게 약자로 분류되는 노동계의 외침은 그야말로 九牛一毛(구우일모) 쯤으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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