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재주 부리는 은행, 생색내는 금융당국
상태바
[기자수첩] 재주 부리는 은행, 생색내는 금융당국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8.12.20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박수진 기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있다. 품을 들이는 사람과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으로, 최근 금융당국의 행보를 보면 새삼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사회공헌’, ‘포용적 금융’을 내세우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정작 책임과 비용은 금융사에게 떠넘기고 있는 모습이다. 

일례로 금융위원회가 지난 8월 말 국방부와 협력해 내놓은 ‘장병내일준비 적금’이 대표적이다. 장병내일준비적금은 병사가 복무 중 적금을 넣을 경우 시중보다 이자를 더 챙겨주는 것으로,  전역 뒤 취업 활동 등에 도움을 주기 위한 마련된 상품이다. 해당 상품의 최고 기본 금리는 5.0%로 여기에 정부 재정으로 금리 1%포인트가 추가 지급된다. 이자소득세 15.4%를 비과세하면 사실상 연 7%대 적금상품과 같은 수준의 이자가 적용된다. 

금융위와 국방부의 이같은 협력에 14개 시중은행들은 발빠르게 장병내일준비 적금을 선보였다. 이들은 대상 확대는 물론, 금융위 요구에 따라 기존 월 20만원 한도를 40만원으로 늘렸다. 

문제는 해당 제도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서 금융당국 추진에 은행들이 곧장 나섰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의 추가 금리 1%포인트 재정 지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다. 예산 확보가 안 된 상황에서 판매가 먼저 일어난 것. 이쯤되자 일각에서는 “군 상대 적금 사기 사건”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생색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초 은행권과 함께 이르면 내년 초에 ‘금리 상한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리 상한 주담대는 변동금리형 상품으로 대출금리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정작 은행 현장에서는 혼합형 금리(5년간 고정 후 변동금리 적용)가 변동금리(코픽스 잔액기준)보다 낮아진 상황에서 추가 수수료를 더하며 고객들이 금리상한 대출 상품을 이용할지, 한목소리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이달 초에는 취약차주를 위해 은행 대출 원금의 최대 45%를 감면해주는 ‘채무조정제도’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방안은 취약차주가 빚을 갚지 못해 신용회복위원회나 법원의 채무 조정에 들어가기 전에 은행 차원에서 미리 채무를 조정해 주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업계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이 날 즉각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까지 정해진 바가 없다”며 한 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위의 사례들의 공통점은 금융당국이 은행권과 협력을 통한 사회공헌 발표보다는 은행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회공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은행권의 입장을 바탕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통보의 색이 강하다. 금융당국이 주도해 만든 프로그램을 현실적으로 직접 나서 거절할 은행이 과연 몇이나 될까. 

취약차주 및 금융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취지는 좋다. 하지만 일에도 순서가 있다고 했다. 좋은 의도로 진행했던 일이 얽힌 순서로 인해 훼손돼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