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꺼내든 ‘삼성 위기論’…누구의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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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꺼내든 ‘삼성 위기論’…누구의 위기인가?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1.10.2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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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출근경영 6개월 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지난 7월29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비교전시회에서 반도체 사업 현황 및 신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그 뒤로 이재용 사장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삼성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로 2008년 4월22일 전면 퇴진을 선언한 이후 23개월 만인 지난해 3월24일 ‘삼성전자 회장’이란 직함으로 경영일선에 전격 복귀한 이건희 회장이 서초동 삼성사옥에 첫 출근한 것은 그로부터 14개월 뒤인 올해 4월21일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반년 후인 10월20일을 즈음해 여러 매체에서 ‘이건희 회장 출근 6개월’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골자를 요약하면, 이 회장 부재(?)로 나태해졌던 삼성그룹이 이 회장의 ‘출근(!)’을 계기로 분위기를 일신하고 쇄신에 나섰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미국·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 회장이 “지금같이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앞을 보고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는 소식이 ‘다시 등장한 위기론’이라는 요지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1993년 “65세 전후면 노망기, 절대로 실무 맡으면 안된다”던 이건희
70세 맞은 2011년부터 젊어서도 하지 않던 ‘출근 경영’ 현안 챙기기
경직된 조직문화 원흉 ‘이건희 도그마’ 걷어낼 유일 존재 이재용은
미약한 존재감 여전…‘낡은 것’ 끝났는데, ‘새 것’은 아직 안 온 상태 


1987년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사망하면서 삼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이건희 회장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재택 경영’이다. 이병철 회장 자택을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개조한 승지원이나 자신의 자택으로 임원들을 불러들여 회의도 하고 결재도 받았던 것이다.

이 회장이 외부 출입을 자제했던 배경에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내면서 쌓인 그의 성격적 특성이 일차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며, 일종의 신비주의로도 설명할 수 있는 행동양식은 이건희 특유의 카리스마를 더욱 압도적인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출근경영 6개월

이건희 회장이 올해 4월21일 이후 매주 두 차례씩 회사에 출근하면서 계열사 전반에 걸쳐 경영현안을 직접 챙기기 시작하면서 삼성 임직원들은 극도의 중압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이 사옥 출근 한 달여 만인 6월 초 삼성테크윈 부정비리에 대한 그룹 자체 감사결과를 보고받고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며 강하게 질책한 사건은 그룹 전반에 대한 감사 태풍으로 이어졌다.

삼성그룹 외부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언급한 ‘깨끗한 조직문화’ 운운에 대해 특검 수사 결과 등을 언급하면서 “더러운 윗물이 아랫물을 나무란다”고 어이없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룹 내부 분위기는 ‘영도자’의 날선 지령에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수세적 대응에 그치던 애플과의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적극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고, 갤럭시S2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출시 6개월이 안돼서 1000만대가 넘게 팔렸다. 또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잠정)도 2700만대를 기록하며 1700만대를 기록한 애플을 제쳤다.

이런 성과에 대해 대다수 국내 언론매체들은 ‘이건희 회장이 위기에 빠진 삼성을 구했다’는 식으로 칭송 기사를 쏟아냈지만 이 회장은 지난 14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자리에서 “지금같이 해서는 안 되겠다. 더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언론을 향해 발언하는 방식이 ‘화두’를 던지듯 포괄적이다 보니 진짜 속내가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을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을 직시해보면 그가 말하는 ‘위기’가 무엇인지 추론할 수는 있다.

위기의 실체 - 정치

2010년 3월의 ‘경영 복귀’가 가능했던 것은 2009년 12월29일의 ‘대통령 특별사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헌정 사상 유례없는 기업인 한 사람만을 위한 단독 특사를 단행한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대통령 특사 이후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던 이명박정부와 삼성그룹 사이의 관계는 올해 3월10일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차 남산 하얏트호텔을 찾은 이건희 회장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래도 계속 성장해왔으니 낙제는 아니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급속 냉각됐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문제의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자 이건희 회장은 급히 수습에 나섰지만 정부여당 내부의 ‘괘씸하다’는 반응을 가라앉히기는 역부족이었고, 그로부터 40여일 후인 4월22일부터 갑자기 ‘출근경영’이 시작됐다는 점은 사뭇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시기를 즈음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연쇄적으로 진행됐고, 이 회장이 유일하게 공식직함을 걸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조사 착수 예정일 하루 전,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명분으로 세무조사가 하반기로 미뤄졌지만 계열사 대부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국세청은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부터 정확히 20일 뒤인 7월26일, 삼성전자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130일 일정으로 시작된 이번 세무조사는 관할 세무서가 아닌 서울지방국세청의 교차 세무조사로 진행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고강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위기의 실체 - 경쟁

삼성전자는 현재 애플과 특허분쟁을 계속하고 있는데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며 내년도 경영환경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삼성에 우호적인 메이저 언론매체의 전폭적인 여론지원과 막강한 유통망을 기반으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휴대폰 산업의 구조 자체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경직된 조직문화로 시장변화에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가 많다.

이건희 회장이 소프트웨어 부문의 중요성과 인재 확보를 목매이게 외치고 있지만 하드웨어 중심으로 30여년 이상 성장해온 조직이 회장의 몇 마디에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의 영역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열성 지지자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애플사와의 특허전쟁으로 아이폰과 갤럭시S2가 동시에 판매금지 가처분될 경우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피해는 삼성이 옴팡 뒤집어쓸 수 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는 것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밖에 삼성이 우위를 점해온 TV 시장에서 경쟁자 LG가 3D TV 부문의 상대적 우위를 무기로 점차 위협을 더하고 있다는 점 또한 쉽게 간과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위기의 실체 - 조직

‘이건희’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부재가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렸다는 삼성 측의 언론플레이(?)가 사실이라면 현재와 같은 비상체제(출근경영)를 통해 단기적 실적 개선을 넘어서 현재 시장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조직문화 혁신’을 기대하기는 더욱 난망해 보인다.

삼성 계열사들이 공채 신입사원들에게 나눠줘 읽히고 승진시험에도 반영하는 사내 교재 중에 『삼성인의 용어』라는 책이 있다.

“한 방향으로 가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이 처음 발행된 것은 1993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자는 이 책이 1997년 증보판이 나온 이후 2009년까지 개정은커녕 추가 인쇄도 이뤄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바 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여가 지났으니 혹 개정이 됐을지 모르겠지만 2009년 당시 확인한 『삼성인의 용어』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 ‘구닥다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0세기에 맞는 그런 책을 21세기 삼성그룹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사용하는 어휘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위한 전 임직원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에서 “인간은 65세 전후면 노망기다. 절대 실무 맡으면 안 된다. 60이 넘으면 손 떼야 한다. 65세 넘으면 젊은 경영자에게 넘기고 명예회장 해야지 어느 그룹처럼 70~80에 실무 맡으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1942년생이어서 올해 우리나이로 70세를 맞은 이 회장은 올해 4월부터 훨씬 젊었던 시절에도 하지 않던 ‘정기 출근’을 하면서 그룹의 경영 전반을 챙기고 있다.

40~50대 젊은 시절에도 독재자에 가까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유명했던 그는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삼성그룹 내에서 ‘황제’를 넘어 ‘신의 반열’에 오른 존재처럼 추앙받고 있다.

한때 삼성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이건희 도그마’를 걷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기대를 모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약한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의 현 상황은 한 마디로 ‘낡은 것은 끝이 났는데, 아직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상태’로 요약된다. 삼성 혹은 이건희 회장의 선택은 ‘새 리더십’을 만들기보다 당장의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낡은 것을 더욱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설령 그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위기’의 본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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