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과세전적부심, 고액탈루자 면죄부로 악용?
상태바
[기자수첩]과세전적부심, 고액탈루자 면죄부로 악용?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1.10.13 2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등포서, 결정 오류 징계 받고도 ‘전례’없다며 재번복 거부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를 통해 추징 세액이 결정된 후 이에 대해 추징 대상자의 억울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과세전적부심사제’(이하 적부심제)가 고액 탈루자에 대한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

적부심을 통해 탈루 세액에 대한 추징결정이 번복된 경우, 추후 다른 행정적 절차를 통해 이 적부심 결정이 오류로 드러나더라도 이를 재번복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적부심제의 맹점

적부심제가 도입된 것은 1996년 4월로,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세무당국의 추징내용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조세 상급기관에 대한 청구 혹은 사법절차를 통한 구제가 가능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도입된 적부심제를 통해 내려진 과세번복결정 내용이 차후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를 자체적으로 뒤집은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에 재번복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세무당국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적부심 사례들은 지방세무당국과 납세자 쌍방의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다. 적부심을 통해 납세자 측이 원하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에는 심사청구(국세청), 심판청구(조세심판원), 행정소송(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 등으로 이어지는 구제절차가 마련되어있다.

그러나 적부심을 통해 납세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경우, 더 이상의 절차는 없다. 적부심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세무조사를 벌인 해당 지방세무서의 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적부심사위원회이기 때문에 결정 내용에 불복할 주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개별 납세자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부심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간편하고 뒤탈도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LG전자 토사구팽 논란의 경우 

본 기자가 전문분야가 아닌 세무행정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러한 세무정책 상의 허점을 인지하게 된 것은 2008년 말부터 지난 3년 여간 추적 취재를 계속 이어온 ‘LG전자 토사구팽 논란’의 주인공 김종혁 신우데이타시스템 사장 때문이다.

신우데이타시스템은 LG브랜드 PC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판매유통회사로, 대형마트체인 홈플러스 전국망을 관리하는 등 잘나가는 중견기업이었으나 2005년 LG-IBM이 LG전자로 흡수된 이후 꾸준히 이어진 ‘고사작전’ 끝에 영업권을 사실상 강탈당한 회사이다.

김종혁 사장은 자신이 ‘토사구팽’당했다며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여의도에 위치한 LG트윈타워 주변에서 플래카드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LG전자 측은 김 사장을 상대로 민형사상 명예훼손에 대한 사법적 절차를 제기했다.

명예훼손에서 최대 핵심쟁점은 김 사장이 이른바 ‘토사구팽’의 사례중 하나로 제시한 LG전자의 탈세 사실 폭로였다.

2005년 당시 LG-IBM이 LG전자로 합병되는 과정에 장부상 존재했는지 자체가 의심스러운 악성재고를 그대로 인계하지 않고 김 사장이 대표자로 되어있는 (주)이코리아 법인을 중계자로 한 허위가장거래를 했고, 이를 통해 수억원에 달하는 세액을 탈루했다는 내용이다.

명예훼손 소송이 시작되자 김 사장은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관련 자료와 함께 탈세 사실을 국세청에 제보했고, 영등포세무서는 LG전자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허위가장거래로 판단하고 2009년 말 1억3천여만원 상당의 추징을 LG전자에 통보했고, 이와 함께 탈세 공범인 김종혁 사장에 대해서는 수원지검 남부지청에 고발 조치했다.

그런데 LG전자는 추징통보에 불복해 과세전적부심을 신청했고, 2010년 2월1일 영등포세무서에서 진행된 적부심에서 조사실무자의 강력한 의견개진에도 불구하고 LG전자의 2005년도 당시 거래는 실물이 있는 거래였다고 판단했고, 탈루액 추징을 무효화시켰다.

반전…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2010년 6월말 이 사건 관련 민원을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그해 7월말 “이 사건은 ‘조세범칙 사건’에 해당하고, 조세범칙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과세전적부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이 건을 ‘탈세 은폐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수사 의뢰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조세범칙사건’이란 “조세범처벌법에 기준하는 범칙 행위에 대한 사건”을 의미하는데, 이를 규정하는 복잡한 규정을 접어두고 쉽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탈세 공범’인 김종혁 사장에 대해 검찰 고발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즉, 탈세 범죄 행위의 ‘종범’격이라 할 수 있는 김종혁 사장에 대해 고발이 이뤄졌는데, ‘주범’인 LG전자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이 사건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후 국세청이 자체 조사 과정을 거쳐 김 사장에게 “절차를 지키지 못한 해당 공무원을 관련 규정에 따라 처분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공문을 내준 것이 그로부터 다시 반년 이상이 지난 2011년 2월 중순의 일이다.

그 사이에 진행된 민사재판은 1심과 2심 모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형사재판 역시 1심에서 벌금형(일부 유죄)이 내려져 2심이 시작됐다.

징계처분 결과를 통보받은 김 사장은 재판부를 통해 관련 자료에 대한 증거 제출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국세청에 ‘제출명령’을 내렸지만 국세청은 시간을 끌고 끈 끝에 8월25일 민사재판 대법원 판결(원심 확정)이 나온 직후인 9월5일에서야 자료를 제출한다.

자료에 따르면 징계처분을 받은 사람은 조사 실무자 2명 뿐이었고, 권익위가 규정한 ‘탈세 은폐 의혹’의 당사자인 전 영등포세무서장 서아무개에 대해선 징계는커녕 조사 자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3일 뒤인 9월8일 서아무개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은 ‘증거불충분’에 따른 무혐의로 내사종결 처분을 내렸다. 내사종결 나흘 전인 9월4일 서씨가 부이사관급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은 이제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덤덤히 흘려보낼 이야기일 뿐이다.

‘법’ 위에 있는 국세청

김종혁 사장에게 사건을 수임한 국선변호인과 형사재판부 판사는 “대법원의 민사 확정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사장은 재판 초기 패소의 원인이 되었던 국세청의 탈세 처분 번복에 대한 재번복이 이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김 사장은 국세청을 수차례 찾아가 “징계에 따른 후속조치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따졌지만 국세청 관계자들이 들려준 답변은 “적부심 결정이 재번복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행정심판을 청구하라”는 것이다.

▲ 필자
자신이 토사구팽당한 과정에 대한 억울함을 사법적으로 해소할 경제적 여력(변호사비용 등)이 없어서 1인 시위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한 투쟁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는 김 사장에게 “억울하면 법대로 하라”는 국세청 관계자의 답변은 조롱처럼 들린다.

사법 판단의 마지막 보루인 대법원은 과거사 정리의 일환으로 권위주의 정부 시절 내려진 대법원 판결들에 대한 재심을 통해 과거 잘못 내려진 판결들을 번복 정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최종 해석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도 동일 주제 동일 사안에 대한 헌법심판 요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시대 변화에 맞춰 헌법 해석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러나 지방세무서 적부심사위원회의 심사결정은 재번복이 불가능하다.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세청 관계자들의 말이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