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세상을 바꾼 천재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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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세상을 바꾼 천재 스티브 잡스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1.10.07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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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애플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5일(현지시각)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IT업계의 황제가 된 스티브잡스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을 산 인물로 회자된다.

개인용컴퓨터(PC), 도스 시대를 벗어나 윈도우 같은 형태의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 컴퓨터마우스, 웹브라우저, 3D애니메이션, 대용량 MP3플레이어, 온라인 음악시장,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 현대인들이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문명의 산물들이 모두 그의 손을 통해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는 마이크로소프트 CEO 빌 게이츠지만, 빌 게이츠가 성공한 길마저도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먼저 개척한 뒤를 따라가는 ‘모방’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스티브 잡스의 ‘부재’가 세상에 던진 충격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IT업계의 선구자였지만 정식으로 공학을 배운 적이 없으며,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예술가적인 기질과 수도승 같은 생활태도를 유지해 ‘IT시대의 위대한 구루(영혼의 스승)’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날 연설에서 그는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는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 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하진 않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라며, “아무도 피할 수 없고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 죽음은 삶을 대신하여 변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반전 인생’, 사고뭉치 문제 학생이 ‘IT시대의 위대한 구루’로
성장하기까지…고통, 절망, 방황은 언제나 그를 성장시켜왔다

IT혁신의 선구자였지만 전자공학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
예술가적 기질, 수도승 같은 태도…한때 불교 승려 출가 고민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그의 생모는 아버지의 반대로 시리아 출신 무슬림 이민자인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잡스가 태어난 지 1주일 후에 폴과 클라라 부부에게 아이를 입양시킨다. 그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준 사람들이다.

생모는 처음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폴 부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스티브잡스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입양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잡스가 2005년 미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장에서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방황, 토양을 다지다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 먹는 비행 청소년이었지만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에 재미를 들리면서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안 휴렛패커드(HP)사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고 HP사에서 여름철 알바를 뛰기도 했다.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으나 1학기만 수강한 후 중퇴했다.

중퇴 이유는 비싼 학비 때문으로, 중퇴 후에도 18개월 동안 ‘도강생’으로 학교에 머물면서 여러 강좌를 들었는데, 특히 타이포그래피 수업은 이후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면서 수려한 글자체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1973년 한 사과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 기거하던 일본 선불교 승려를 만나 불교에 입문한 잡스는 1974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에 입사한 직후 장기간의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불교 공부에 깊이 빠져들었다.

잡스는 “불교를 접한 것이야 말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는데, 사업이 잘 안되던 시기에는 출가해 승려가 될까를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하며, 아이팟 등의 단순한 디자인이 참선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사과, 세상에 퍼뜨린 씨앗
잡스는 1976년 천재 공학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공개했다. 모니터도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으나 의외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이듬해 ‘애플II’를 선보이면서 회사를 상장했다.

▲ 1984년 매킨토시 발표

이어서 1979년 ‘애플II플러스’를 선보이면서 승승장구한 잡스는 1980년 애플 지분 가치가 무려 2억 달러에 달하며 돈방석에 앉게 됐지만 1981년 IBM이 개인용PC 시장에 진출하면서 애플의 돌풍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애플은 이후 1984년 사상 최초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채용한 ‘매킨토시’를 출시하면서 재반격에 나섰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자신이 공들여 영입한 CEO 존 스컬리가 주도한 경영권 분쟁에 밀린 결과였다.

1985년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설립한 잡스는 1986년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혼 문제 때문에 자금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루카스필름 컴퓨터그래픽사업부를 인수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PIXAR)’의 시작이다.

잡스는 10년 간 6천만 달러를 투자했고, 픽사는 단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스카상을 여러 번 받았으며 그 뒤로 최초의 장편 3D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픽사가 2006년 월트디즈니사에 합병되면서 잡스는 디즈니사의 개인 최대주주가 된다)

한편 잡스가 떠난 애플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급기야 1997년 적자가 18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결국 애플 이사회는 잡스에게 손을 내밀고, 잡스는 1997년 넥스트의 애플 합병과 함께 ‘임시 CEO’로 애플에 복귀한다.

▲ 1998년 아이맥

잡스의 재취임 첫해인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낸 애플은 이듬해인 1998년 발매한 ‘아이맥’의 선풍적 인기에 힘입어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로 전환했고, 2000년 1월 스티브 잡스는 정식 CEO가 된다.

잡스가 애플을 떠나서 만든 회사 ‘넥스트’의 기술들은 애플 재도약의 핵심이 됐다고 한다.

이후 2001년 출시된 mp3플레이어 ‘아이팟’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아이팟’의 성공을 기반으로 2007년 세상에 등장한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은 세상을 다시 한 번 변화시켰고, ‘아이폰’의 성공을 기반으로 2010년 내놓은 아이패드는 IT기기의 개념을 또 한 번 바꿔놓기도 했다.

▲ 야위어가는 잡스

2011년 8월24일, 애플은 성명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사임하고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이 새로운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잡스는 CEO직에서 물러나지만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키로 했으나 사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1년 10월 5일에 만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날 애플은 홈페이지공지를 통해 “애플은 명확한 비전과 크리에이티브를 지닌 천재를 잃었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다”며,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브 잡스 주요 어록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는 이유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 1985년, 플레이보이 인터뷰

▲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

“나머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갖고 싶습니까?”

- 애플 설립초인 1983년 당시 대기업인 펩시 CEO였던 존 스컬리를 CEO로 영입하기 위해 설득하면서.

“일본 제품이 미국 해안에 마구 밀려오고 있다. 꼭 해변가에 떠밀려온 죽은 물고기들처럼.”
- 플레이보이, 1985 2월호

“돈 같은 일에 대해 내가 주로 갖고 있는 생각은 매우 웃기다는 거다. 모두의 관심이 거기에 집중돼 있지만 돈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가운데 가장 통찰력 있는 일도 아니고 가치 있는 일도 아니다.”
- 플레이보이, 1985년 2월호

“무덤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일 따윈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우리는 정말 놀랄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다.”
- 월스트리트 저널, 1993년 5월25일

“(‘토이스토리’는) 50년 전 월트 디즈니가 ‘백설공주’로 처음 시작한 이래 애니메이션의 최대의 진보이다.”
- 포춘, 1995년 9월 18일

“창의력이란 단순히 사물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면 다소 죄책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는 그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봤을 뿐이다.”
- 와이어드, 1996년 2월

“PC 전쟁은 끝났다. 끝. 마이크로소프트가 이긴지 오래다.”

- 포춘, 1996년 2월 19일

“나는 사람들이 고귀하고 명예롭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다. 나는 개인들에 대해 정말 낙관적이다. 개인들로서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선하다. 나는 그룹으로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걱정스럽다. 미국은 많은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곳이었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이 나라를 더 좋은 장소로 만드는데 대해 더 이상 흥분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와이어드매거진, 1996년 2월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유일한 문제는 그들에게 취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취향이 없다. 나는 이걸 사소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심각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원천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제품에 문화를 입히지 못한다. 내가 슬퍼하는 것은 MS의 성공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성공하건 말건 나에겐 아무 문제도 없다. 나는 그들이 정말 삼류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 트라이엄프 오브 더 너즈, 1996년

▲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이들은 친구이자 경쟁자로서 30년을 살아왔다.

“나는 그(빌 게이츠)에게 최선을 희망한다. 정말이다. 나는 그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소 좁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는 좀 더 젊었을 때 LSD(환각제)를 흡입하거나 아쉬람(힌두교도 수행지)에 갔었더라면 좀 더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뉴욕타임스, 1997년 1월12일

“제품들이 후지다! 제품에서 더 이상 섹스를 찾을 수가 없다.”
- 애플 CEO였던 길 아멜리오의 경영에 대해. 비즈니스위크 1997년 7월

“애플사에는 뛰어난 자산이 있지만 어떤 처치를 하지 않으면, 이 회사는 어쩌면…. 적당한 말을 찾는 중인데… 어쩌면… 음… 죽을 수도 있다.”
- 임시CEO로 복귀하면서. 타임, 1997년 8월18일

“내가 여기 온 이후로 아무도 우리를 잡아 삼키려 들지 않는다. 아마 우리 맛이 어떨지 두려운 모양이다.”
- 애플 주주총회, 1998년 4월22일

“포커스 그룹에 맞춰 제품을 디자인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진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정확히 모른다. 단순함은 복잡한 것보다 더 어렵다. 생각을 명확하게 하고 단순하게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일단 생각을 명확하고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면 당신은 산도 움직일 수 있다”
- 비즈니스위크, 1998년 5월25일

“혁신은 R&D 자금을 얼마나 갖고 있냐와 상관없다. 애플사가 매킨토시를 들고 나왔을 때 IBM은 R&D에 최소 100배 이상의 비용을 쏟고 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인력을 갖고 있느냐,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 결과가 얼마나 나오느냐에 관한 문제다.”
- 포춘, 1998년 11월9일

“애플을 위한 해결책은 비용 절감이 아니다. 애플사에 필요한 건 현재의 궁지에서 벗어나도록 방법을 혁신하는 일이다. 마이크로가 맥을 베끼는데 너무 출중하거나 영리해서가 아니라, 맥이 10년간 전혀 변한 게 없어서였다. 그게 애플의 문제다. 애플만의 차별성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 『애플컨피덴셜2.0: 세계 최고로 다채로운 회사의 역사』(오웬W. 린즈메이어 저) 중에서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일이었음이 드러났다. 성공에서 오는 중압감이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전에 비해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성기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기회가 되었다.”
- 스탠포드대학 학위 수여 강연에서 2005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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