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 일자리 나눔 효과 아닌 ‘비정규직 폭증’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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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일자리 나눔 효과 아닌 ‘비정규직 폭증’ 부작용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8.11.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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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인 이상 사업장 주52시간 근로 맞물려 비정규직 폭증 / 전문가 "내년 처벌유예 사라지면 비정규직 문제 더 악화"

[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이 모자란 일손을 보충하기 위해 추가 채용을 하는 ‘일자리 나눔’이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300인 이상 대규모사업장에 적용됐던 근로시간 단축제도 처벌유예가 끝나면서, 이러한 비정규직 역전 현상이 더 뚜렷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최근 1년 사이 대형 사업장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더 많이 고용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종사자 수 300명 이상인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임금근로자 253만 4000명 중 비정규직은 37만 3000명이었다. 이는 1년 전보다 3만 9000명 늘어난 수치다.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폭은 7년 만에 가장 컸다. 2011년에 정규직이 1000명 늘고 비정규직이 4만 1000명 증가한 것을 마지막으로 2012∼2017년 6년 연속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더 많이 늘었던 추세였지만 올해 들어 이런 흐름이 다시 뒤집힌 것이다. 경기가 악화한데다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고용비용까지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대규모 사업장마저 높은 비용이 드는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300인 이상 사업장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월 13.55%에서 올해 8월 14.73%로 1.18% 늘어났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는 216만 1000명으로 작년 8월보다 2만 9000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와 함께 중소사업장에서는 아예 정규직 근로자가 줄어들었다. 종사자 수 5~299명인 사업장은 최근 1년 사이에 정규직 근로자가 6000명이 감소했다. 8월 기준 이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가 줄어든 것은 최근 9년 사이에 처음 있는 일이다. 산업 전체로도 올해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661만 4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 6000명 늘었다. 비정규직 비중은 33%로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며, 정규직 근로자는 3000명 증가에 그쳤다. 특히 산업별로는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에서 정규직이 4만 70000명, 비정규직이 3만명 줄었다. 제조업 정규직은 지난해 6만 5000명 늘었지만, 올해 들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숙박 및 음식점업은 정규직이 9만 6000명 줄었고 비정규직은 1만명 늘었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가 비정규직 증가와 뗄 수 없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정책이 물론 좋은 의도는 있지만, 이미 경직적인 노동시장에 주 52시간 시행으로 노동비용을 높이는 것은 인력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우선 기업들은 사람을 뽑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성 교수는 “내년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처벌유예가 사라진다. 현재와 같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는 내년에도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내년도 지금보다는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비용이 발생해 당연히 근로자들의 임금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도 “전반적으로 경기가 하강국면을 맞은 상태에서 미·중 무역갈등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여러 가지가 겹쳤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주52시간 근로제를 실시해 기업 부담이 중첩되며 내년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직된 고용구조를 지적하며 “고용을 유연하게 만들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지만, 고용이 경직된 상황에서 정책을 시행해 일자리는 늘어날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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