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성지’ 명동성당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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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성지’ 명동성당이 변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7.11.23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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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아노조 명동성당 진입농성에 “성당에서 나가라”…수배자보호 약속도 번복

명동성당 “이전의 명동성당 아니다”…“2000년도에 집회 거부 의사 밝혔다”
뉴코아노조 “힘없는 노동자 내 쫓는 게 예수님사랑?”…“사랑으로 감싸라”

과거 70~80년대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주인사들의 활동무대이자 수배자들의 은신처 역할을 담당해 ‘민주화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 ‘명동성당’. 그러나 지난 6월부터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고용보장’ 등을 외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뉴코아노동조합에게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그냥 ‘성당’일 뿐이다. 성당측은 노조가 성당부지 내에 설치한 천막을 강제 철거하는가하면 경찰병력을 동원해 성당 내에서 농성은 물론이고 기자회견조차 막았다. 심지어 농성철회를 조건으로 약속했던 수배자 2명에 대한 신변보호마저 번복했다.

▲ 과거 70~80년대 민주열사의 주무대, 수배자들의 은신처 역할을 담당해 ‘민주화의 성지’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명동성당’.
“신부님을 만나 무릎을 꿇고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우리를 받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인 명동성당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다섯 달의 파업기간 중 넉 달을 수배 생활로 보내고 있는 박양수 뉴코아노조 위원장. 그는 지난 21일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뉴코아노동조합은 지난 20일 명동성당 마리아상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박양수 뉴코아 노조위원장은 농성에 들어가며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서려있는 명동성당에서 다시 한 번 뉴코아-이랜드 문제 해결을 사회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갈 곳 없는 뉴코아-이랜드 노조에게 명동성당은 방패막이가 돼 주지 못했다. 성당 측은 “성당의 동의 없이 부지 내에 천막을 친 것은 무단침입”이라며 천막설치 2시간 여 만에 강제철거 했다. 천막을 지키려 눈물을 보이는 조합원들의 모습에도 성당측은 강경했다. 이들은 “예전의 명동성당과 다르다. 농성을 허용할 수 없다”며 “성당 내의 농성을 철회한다면 수배자 2명의 신변은 보호해주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현재 박양수 위원장과 윤성술 순천지부장은 이랜드 사측의 고소 ∙ 고발로 4개월 넘게 수배중에 있다. 이대로 성당 문 밖을 나서면 성당주위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 의해 바로 연행되는 상황인 것이다.

현행법상 종교 시설 안이라고 해서 경찰력과 같은 공권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 종교문화적 여파를 감안해 군사 정권 시절에도 명동성당 안으로의 공권력 투입은 자제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들이 명동 성당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뉴코아 노조 또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보금자리였던 명동성당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명동성당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와 관련 성당측 한 관계자는 “명동성당에는 불법 집회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지난 2000년 12월 성당의 동의를 받지 않은 집회는 불허한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우리집에 왜 왔니~”

▲ 민주노총과 이랜드그룹 노조원들이 지난 7월8일 비정규직 대량해고사태에 반발하며 잠원동 킴스클럽을 점거, '매출 타격 투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천막 사수와 철거를 둘러싼 노조와 성당측의 실랑이는 수배자 두 명을 제외한 모든 조합원들은 성당 내에서 철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명동성당은 지난 20일 남대문경찰서에 시설물보호 요청신청을 내고 ‘명동성당에서의 모든 집회∙ 행사를 막아줄 것’을 경찰측에 요구했다.

다음날인 21일 오전 11시로 예정돼 있던 뉴코아노조의 기자회견은 기자회견을 고집하는 노조와 이를 저지하는 경찰의 실랑이 끝에 예정됐던 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게 진행됐다. 그러나 기자회견내내 한쪽에서는 조합원과 성당직원들의 입씨름이 오갔다. “당신들(노조)은 성당에 불법으로 들어왔다. 어서 나가라”는 성당측 입장과 “예수님 사랑이 힘없는 노동자들을 내치는 것이냐”는 조합원의 입장이 이들 언쟁의 주요 골자다.

박양수 노조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이곳에 몸을 숨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이곳을 거점으로 점차 잊혀 가는 이랜드 사태를 환기시키기 위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연대조직을 정비하고 사회 여론도 다시 모을 것이다. 뉴코아 매장 타격 투쟁을 진행하고 점차적으로 투쟁 강도도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성술 순천지부장은 “명동성당이 사랑과 자비로 세상을 품듯 이랜드자본에게 탄압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따스하게 품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숨바꼭질하는 명동성당(?)

명동성당 측 말대로 명동성당은 이미 ‘예전의 명동성당’이 아니었다.

뉴코아 한 조합원에 따르면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을 당시, 천막을 치고 있는 마리아상 앞에 신도들 십여명이 몰려와 기도를 했다. 이내 기도를 마친 신도들이 갑자기 목장갑을 끼고 천막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신도들에게서 술 냄새까지 났다”고 전했다.

신도들이 술을 마셨다는 점, 목장갑까지 준비돼 있었다는 점 등은 조합원들이 성당측이 신도들에게 모종의 입김(?)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기자는 성당측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주임신부를 만나기 위해 사제관을 찾았다. 평소 사제관의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 안쪽의 관리실에 용무를 보고한 후 출입이 허용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제관의 문이 열려 있었다. 사제관 2층에서 박신언 주임신부를 볼 수 있었으나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박 주임신부는 “누가 문을 열어줬냐”며 “사제관 밖의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30여분을 기다려도 신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후에 찾아간 사제관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불가능했다. 명동성당 사무실에서 담당자라고 연결해준 사람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 가지만 묻겠다는 기자의 말에도 “말 못한다. 전화 끊겠다”는 말만 남긴 채 관계자는 전화를 끊었다.

한편 성당측은 애초에 “나머지 조합원들을 제외한 수배자 2명은 성당 내에 있을 수 있도록 하겠다”던 말과 달리 모두 다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성당측은 지난 22일 두 참모진에게 성당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끌어내겠다고 통보했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지난 23일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성당측은 우리가 성당에 있음으로 성당이 시끄러워졌다며 입장 번복의 이유를 밝혔다. 주임목사는 이미 권한은 내 선에서 떠났다면서 모든 일은 사목회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언론에서 명동성당을 나쁘게 비추는 것을 접한 후 또 다시 입장을 번복했다”며 “주임목사가 직접 찾아와 ‘의미가 이상한 쪽(두 참모진을 내쫓으려는 것)으로 전달된 것 같다. 건강이 상할까 우려되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며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한편 박양수 위원장과 윤성술 순천지부장은 성당 뒤편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 침낭을 깔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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