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칼럼] 이것은 사관만이 쓸 수 있는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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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현 칼럼] 이것은 사관만이 쓸 수 있는 붓
  • 시인 고산정 배동현
  • 승인 2018.09.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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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밤 사관(史官)체세영이 소식을 듣고 대궐로 달려갔다. 

영의정 정광필에게 사건의 내용을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남곤에게 물으니 모른다하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정광필이 그에게 본대로만 기록하라고 나무랐다. 김근사(金謹思)가 곁에 있다가 사화에 연루된 선비들의 죄목을 고쳐 쓰려고 체세영의 붓을 빼앗았다. 

채세영은 급히 일어나 다시 그 붓을 빼앗으며 “이것은 사관만이 쓸 수 있는 붓”이라고 했다. 그리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은 간관(諫官)이 아니오니 함부로 말함은 죄가 됩니다. 하오나 조광조 등이 무슨 큰 죄가 있어 지금 이렇게 하십니까? 죄명을 듣고자 합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그 서슬에 주눅이 들어 모두 목이 움츠러 들었다. 길을 가면 사람들이 그를 가리키며 “저분이 임금 앞에서 붓을 빼앗은 분이다”라고 했다. 불똥이 제게로 튈까봐 모두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일개 사관이 분연히 일어나 불의를 똑똑히 지적하였다. 

세조때 홍윤성이 춘추관의 책임자로 있을 때였다. 사관이 기록한 ‘시정기(時政記)’에 자기의 죄목이 줄줄이 써있는 것을 보았다. 분개한 그가 말했다. “왜 종이에 고급스레 인쇄한 강목(綱目)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데, 그까짓 ‘동국통감’ 따위야 누가 보겠느냐? 너희들 마음대로 써라.” 

그의 말대로 이제 와서 ‘동국통감’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의 이 말과 그의 행동은 여러 기록에 남아 지금껏 전한다. 어느 시대나 현재는 늘 난세다. 지나고 나니까 그때가 좋았다 하고 싶은 적은 있어도, 눈앞의 현실은 언제나 답답하고 한숨만 난다. 

독선에 빠진 임금이나 부화뇌동하는 신하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언로(言路)를 틀어막고 시녀가 될 것을 강요해도 그 앞에서 가슴 펴고 바른말 하는 전국시대의 자사 같은 신하,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원리원칙에 입각한 공정한 법집행의 잣대를 세웠던 정위(廷尉)장석지, 임금 앞에서 불의를 참지 못해 붓을 빼앗아 들며 사필의 매서움을 일깨웠던 사관 채세영, 이런 정신들이 있어서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다 생각한다. 

지금 그들은 어디 있는가? ‘너희들 마음대로 써라 어느 놈이 보겠느냐’는 홍윤성 식의 오기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어쩔것인가? 

전국시대 일이다. 위후가 옳지 않은 일을 하는데도 여러 신하들이 한 입에서 나온 듯 화답하자 자사가 말했다. “임금의 나라 일이 날로 그릇되어 갑니다. 임금이 말을 해 놓고 스스로 옳다고 하면 경대부가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경대부들이 말을 해 놓고 스스로 옳다고 하면 일반 백성이 어찌 그 잘못을 바로 잡겠습니까. 임금과 신하가 스스로 어질다고 하는데도 여러 아래 사람들이 다함께 어질다 하니, 어질다 하면 잘 보여서 복이 있고, 바로잡으려 하면 거슬리어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다면 선(善)이 어디에서 생겨나겠습니까?”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도 좋은 게 좋다고 눈 감아 외면하면 일신의 영달만을 붙좇는 군신의 잘못된 행태를 통렬히 나무란 것이다. 한나라 태종 때 장석지가 법을 집행하는 관리인 정위로 있을 때였다. 왕이 거동 하다가 다리를 지나는데 백성 하나가 갑자기 달려나오는 통에 임금이 탄 수레를 끌던 말이 크게 놀랐다. 백성을 잡아다가 정위에게 보내니, 장석지는 그에게 가벼운 벌금형을 내렸다. 임금은 화가 났다. 자칫 임금이 크게 다칠뻔 했는데 고작 벌금형을 내리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임금의 힐난에 장석지가 대답했다. “법은 천하가 공변되니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왕께서 그를 목 베었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정위에게 맡기셨으니 법대로 할 뿐입니다. 정위는 천하의 표준인데 한번 기울어지면 법을 적용함이 모두 허사가 되고 이랬다저랬다 할 것이니 백성이 그 손발을 어디다 두겠습니까?” 임금이 마지 못해 그대로 따랐다. 

한번은 한고조 유방의 사당 앞에 놓아둔 옥고리를 훔친 자가 있었다. 장석지가 그를 죽여 저자에 내다 버리라고 했다. 임금이 크게 노했다. 삼족을 멸해도 시원치 않은데 기시(棄市)는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장석지가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법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제 종묘의 이물을 훔쳤다고 삼족을 멸하신다면, 가령 어리석은 백성이 장릉의 한 줌 흙을 취하게 되면 폐하께서도 장차 무슨 법으로 더하시겠습니까?” 옥고리 하나 훔쳤다고 삼족을 멸한다면, 만약 무덤을 도굴하는 자가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항변이었다. 

임금이 할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이리 휘고 저리휘는 법 집행으로는 결코 백성들의 신망을 얻을 수 없음을 장석지는 한 몸으로 보여 주었다. 법이 공평한 저울질을 잃고 보면 그것은 사람을 잡는 그물이자 함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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