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칼럼] 詩를 낭송하면서 세상을 다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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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현 칼럼] 詩를 낭송하면서 세상을 다시보라!
  • 시인 고산정 배동현
  • 승인 2018.09.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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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배동현

[매일일보] 이즈음은 덜해졌지만, 명절 때가되면 가끔 방송국이나 신문사로부터 내 직업과는 좀 거리가 있는 얼도 당토 않은 청탁을 받곤 했던 일이 가끔 생각난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은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기꺼이 응하곤 했던 일들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문학 유산인 유명 시조를 자주 낭송하는 일을 좋아했다. 시를 낭송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시에 몰두하는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 근자에는 ‘따끈따끈한 오늘의 시’란 타이틀로 아침이면 두 세편의 시를 가까운 지인들께 전달하곤 한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침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내키자 않는 고역이겠지만 정말 하루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꾹 참고 시를 배달하고 있다. 거절하시는 분들도 있어나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라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해방 후‘시조놀이’라는 이름의 ‘시조 놀이’는 실제로 있었던일이다. 3.1운동 이후 민족성 회복운동의 차원에서 어느 시인에 의해 제창되어 십수년동안 부녀자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기리에 보급된바 있다는 일화도 듣고있다. 시조에 의한 진한 감동이 가슴에 전해진다. 

해방 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여러 형태로 부활되거나 지역언론 매체에 게제 된바 있다고 전해온다. 시와 시조의 대 국민의 향연이였다고 생각한다. 지역시인들이 이같은 문화상품들을 개발하여 여러 매체에 나가 그 의의를 설명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우리한민족이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고 즐겨 했는지 놀라워 하고 있다. 

그 ‘시조놀이’는 결국 상품으로 부각되는 데는 실패했으나, 시와 시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 ‘시조놀이’는 지금도 학생들이 모이는 시(시조)행사에서 가끔 시행하고 있다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행사는 시조의 종장이 쓰인 패 수십장을 무작위로 만들어 놓고 그 패에 당첨되면 그 시조들의 전문이 실린 패를 한 장씩 낭송하는 놀이다. 그때마다 종장 패를 먼저 찾아 가져 가장 많은 종장 패를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이 ‘시조놀이’ 주체자는 당연히 이 놀이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내 의도는 실은 그 실패한 상품을 되살리려는 뜻도 있지만 내가 오늘 이‘시조놀이’를 소개하면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음율의 취득이다. 시 형식으로 된 문학 작품을 낭송하는 일은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시 낭송은 단순히 읽기 교육의 성과에 그치지 않는다. 시가 ‘운율의 언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시 낭송은 시에 대한 바람직한 독해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 언어를 스스로 연마하고 체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낭송을 되풀이하다 보면 저절로 암송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시 암송만으로 국어시험을 치르는 유럽의 초등학교들의 예를 들어보자. 지나친 영탄조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시의 의미와 형태를 잘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 시를 낭송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시낭송은 문학행사시 마다 빠지지 충요 매뉴다. 이 연장선에서 시 낭송이 시를 창작하는 일에 직접 연계된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시는 ‘운율의 언어’이고 그 점을 확인하는 일은 낭송 이상의 방법이 없다. 습작한 시를 스스로 소리내어 읽어보는 버릇을 하면 ‘운율의 언어’로서의 결함도 빨리 찾아낼 것이다. 특히 ‘운율’이 자연스럽지 못한 대목을 고치고 다듬는 것으로부터 창작 수준을 높여갈 수 있다. 

또 하나, 나는 문학작품이나 다른 문화적 유산을 자신의 삶에서 활용하라는 교훈을 주고 싶다. 문학 작품을 읽는 일이 입시에 보탬이 되는 외에 인간의 정서적 함양이나 인문적 교양의 축적에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이다. 시 낭송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나 알고 있어면 큰 결실을 얻게 된다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사실은 기대 이상으로 직간접적으로 우리 삶과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당장 ‘시조놀이’도 문학을 삶과 연계된 교육적인 놀이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문학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문학적인 것’을 현실에서 실용화 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손쉽게 취득하게 된다. 의외로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문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될 것이다. 

시를 낭송하면서 세상을 다시 한번 보라! 당신은 살아가는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에로의 도전! 당신은 시 낭송으로 하여 언제나 눈물과 웃음과 감동을 주는 문학의 통로을 활짝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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