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칼럼] 역사책의 행간에 숨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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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현 칼럼] 역사책의 행간에 숨은 진실
  • 고산정 시인 배동현
  • 승인 2018.09.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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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배동현

[매일일보] 과거는 언제나 현재와 통하고 미래와 만난다. 역사는 과거를 현재로 이어주는 가교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옛날에도 똑같이 있었던 일이다. 

옛 일을 기억하는 것은 옛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날을 위해서다. 옛 역사를 펼쳐 읽다가 인간 삶의 모습이 너무도 똑같이 반복되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많다. 

동양의 역사기술 방식은 자못 독특한데가 있다. ‘자치통감’과 같은 통사는 한 임금의 수십 년 치세래야 불과 한두 페이지 할애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역사에 족적을 남긴 임금의 경우다. 

수십 년 치세 기간 그 임금의 치적과 공과를 논하자니 자세히 쓰기로 말하면 책 한 권도 다할 때가 있다. 그래서 주로 그 임금이나 인물의 전형적인 면면을 보여주는 일화를 간략히 기술하고 마는 수가 많다. 정작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는 그 행간에 다 담겨있다. 바로 이 점이 ‘사기’나 ‘자치통감’ 같은 옛 역사책을 오늘까지 살아 있는 독서 대상이 되게 만든 까닭이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 점에 특별히 유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치통감’에는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광은 다만 문후의 세 가지 일화를 제시해 놓았다. 

처음 두 이야기는 문후가 어진이를 스승으로 섬기며 그 집을 지날 때 반드시 예를 표했다는 이야기와, 신하들과 즐겁게 술 마시다가 우중에 들로 나가면서 산지기와 사냥 약속을 했으니 이 자리가 즐겁지만 직접 가서 약속을 파기하겠노라며 몸소 약속을 취소하고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는 신하들에게 자신이 어떤 임금인지를 묻자 모두들 어진 임금이라 했는데, 임좌란 신하가 어진 임금이 아니라고 바른말을 했다. 임금이 몹시 불쾌해 하자 임좌가 물러났나. 문후가 책황에게 다시 물었다. 책황은 어진 임금이라고 대답했다. 어찌 아느냐고 했더니 임금이 어질면 신하가 바른 말을 한다고 했는데, 좀 전 임좌의 말이 옳아 임금이 즉시 임좌를 불러오게 하여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 세 가지 예화의 의미는 이러하다. 문후는 위로는 스승을 예로써 섬길 줄 알았고, 아래로 미천한 백성과의 하찮은 약속도 반드시 지켰으며, 자신의 허물을 과감히 인정할 줄 아는 도량을 지녔다. 사가는 이 일화를 소개하고 나서 ‘이로부터 위나라가 부강해졌다’는 한 줄을 덧붙였다. 임금이 위에서 이런 자세를 지녔으니, 그의 대에 이르러 위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한나라 성제 때에는 괴리 현령을 지냈던 주운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글을 올려 임금 뵙기를 청했다. 대신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지금의 조정대신은 위로 임금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아래로 백성에게 보탬이 없으니 시위소찬이옵니다. 원컨대 신에게 상방의 참마검을 내려 주시면 아첨하는 신하 한 사람의 목을 베어 그 나머지를 힘쓰게 하겠나이다.” 

왕이 그게 누구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성제의 스승이었던 안창후 장우를 지목했다. 왕이 격노해 끌고가 감옥에 가두라하고 하자, 그는 대궐의 난간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 서슬에 난간이 그만 부러졌다. 그가 외쳤다. 

“저야 지하에 가서 옛 충신 용봉.비간과 더불어 놀면 그뿐이지만, 폐하의 조정은 어찌한단 말입니까?” 

뒤에 난간을 고치려 하자, 왕이 말했다. 

“바꾸지 말고 그대로 수리하라. 바른말 하는 신하를 기념코자 한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장에 전임 군수가 난입해서 장관의 목을 벨 칼을 달라고 외친 셈이다. 그래서 ‘절함’ 즉 부러진 난간이란 고사가 생겨났다. 사관은 왜 이 때 하필 이 기사를 적었을까? 

이때는 외척들이 정치를 전단하고, 임금은 조비연 자매에게 푹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던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시절의 하수상을 참다 못해 일개 전직 현령이 임금의 스승을 목 베겠다고 직언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사관은 결국 대궐 난간을 부러뜨리면서까지 바른말을 아끼지 않았던 신하가 있었기에 용렬한 임금이 그나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용렬한 임금도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난간을 바꾸지 못하게 했다. 

임금이 스스로를 어질게 여겨 교만에 빠지고, 간신들이 에워싸 자기 당의 이익만을 위해 언로를 막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있는 일이다. 신하된 자로 임금과 나라를 위해 제 목숨을 던져 바른말 할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나라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역사책을 보면 한 시대 흥망성쇠의 자취가 거울처럼 얼비쳐 있다. 거기에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라꼴이 하도 뒤숭숭하다보니 자꾸 역사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대통령께서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으나 가끔 한번 씩은 행여 잘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봐 주시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예스맨이 득세하는 세월탓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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