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폭(酒暴), 술에 대한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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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폭(酒暴), 술에 대한 우리의 자세
  • 인천삼산경찰서 갈산지구대 순경 박상민
  • 승인 2018.08.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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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 박상민

[매일일보] 2017년 통계청 조사 결과 소주 내수량 130만 9000kl, 소주 한 병 용량(360ml)으로 환산해보면 약 36억 3600만병. 같은 해 주민등록인구 중 20세 이상 4204만 명을 대입해보면, 국민 1명이 1년 간 마시는 술의 양은 87병 혹은 779잔이다.

2014년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은 독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조사됐다. 사회생활의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술은 대학생, 직장인 등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중요한 의미를 간진다.

주량이 많다는 것은 이런 이들에게 일종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개인의 강점이 되는 나라,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가장 쉬운 방법으로 ‘술’을 말하는 나라, 현재 대한민국은 가히 ‘술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술에 대한 관대한 풍토 때문에 일어나는 주취 후 폭력, 시비 등 각종 범죄는 일명 ‘주폭(酒暴)’에 대한 의제를 우리 사회 전면부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충북경찰청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력과 협박을 가하는 사회적 위해범을 가르키는 용어로 주폭을 처음 사용한 이래, 주폭은 우리나라 음주문화의 이면을 말해주는 용어로 자주 거론되었다.

경찰청이 지난해 9월부터 단속을 벌여 주폭 1만 명 이상을 검거한 결과를 보면 주폭은 1만 7210명으로 전체 폭력 사범의 30.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폭력(1만 2414건)을 행사하고, 재물손괴(2263건), 업무방해(1815건), 협박(647건) 등을 일삼은 것으로 조사됐으며, 연령별로는 40~50대 중년층이 52.8로 가장 많고 20대, 3대 주취 폭력자는 각각 16.8%, 19.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주폭에 대해 프랑스는 음주 상태에서 공공장소를 활보하는 것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미국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개봉한 술병을 들고 다니는 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공원에서 남의 눈에 보이도록 술병을 내놓고 술을 마시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1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음주 후 소란을 피우면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5만 원 범칙금이 전부이기에 주폭에 대한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폭염으로 인해 주폭이 사라지고, 온열질환 관련 주취자 구급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경기남북부지방청과 경기도재난안전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경기경찰에 접수된 112신고건수(폭행, 시비, 주취소란 등)는 41만2천712건으로 전년에 비해 1만4천800건이 감소(3.5%)됐다고 한다.

반면 경기소방에 지난 7월 한 달간 접수된 구급출동건수는 6만1천835건으로 전년에 비해 2천627건이 증가(4.3%)했다. 하지만 이 둘이 본질적으로 다른 신고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취 후 나타나는 폭력적인 성향은 일상적인 주취상태에서 항상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의식을 통제할 수 없는 주취 상태에서 불특정하게 발현되는 것이다.

더위에 쓰러져 잠들어 버리거나, 몸에 이상이 생긴 주취자의 구조를 위해 출동한 경찰관, 소방관이 대상자의 의식을 깨우는 과정에서 그들이 언제 주폭으로 변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약재 중 부자(附子)란 것이 있다. 실제로 질병 치료에 많이 쓰이고 있는 약재로, 그 뜨거운 성질로 인하여 양기부족이나 차가운 기운이 너무 심하게 쌓인 병증에 사용된다. 허나 이 부자는 극약의 한 종류이기도 하여 과거 사약을 제조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진 약재인 것이다.

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술의 알콜 성분은 상처를 치료하는데 필수 요소이며, 우리가 먹는 음식에 풍미를 제공하는 것도 술이다. 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갖는 중요성은 열거할 필요가 없으며 그러한 관계 쌓기에서 적당한 술은 좋은 촉매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과용(過用)하고 오용(誤用)하면 상기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술이란 지쳐 있는 심신을 달래줄 좋은 친구인 동시에, 나의 목을 죄여 올 수 있는 적과 같다.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며,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답을 알고 있음에도 오답을 향해 가는 우를 범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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