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안희정 무죄 논란, 정작 욕먹을 곳은 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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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안희정 무죄 논란, 정작 욕먹을 곳은 국회다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8.08.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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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지난 1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 1심 판결서 ‘완전 무죄’가 선고되자 침묵을 지킨 민주당을 제외하고 주요 정당들이 사법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한국당은 “피해자의 진술이나 증언만으로는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 성폭력 범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사실상 어떠한 미투도 법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사법부가 선언한 것”이라며 “무죄판결을 보며 대한민국 곳곳에서 안도하고 있을 수많은 괴물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법부의 판결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신보라 원내대변인)고 했다.

또 정의당은 판결문 중 ‘위력은 있는데 위력행사는 없었다’는 내용에 대해 “‘술을 먹고 운전을 했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상식적으로 법원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결국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가진 이가 위력을 행사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최석 대변인)고 했다. 평화당 역시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이라고 했고, 바른미래당은 “대단히 인색한 판결”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책임은 국회에 물어야할 상황이다. 국내 ‘미투 운동 1호’라는 압박감에 재판부도 고심한 듯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과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이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소개하며 “두 가지 룰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 법제 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행법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유죄 판결을 할 수 있느냐’는 해명처럼 들린다.

스웨덴에서 채택한 ‘예스 민스 예스 룰’은 상대방이 명시적이고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모든 성관계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것으로 강력한 처벌 규정이다. 미국 등 상당수의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노 민스 노 룰’은 그보다는 약한 처벌이다.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를 한 경우에 처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형법에는 ‘노 민스 노 룰’조차 명시돼 있지 않다. 현행 형법 297조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폭행과 협박으로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에 이르러야 명백한 처벌대상이 되는 것. 법조계에서 ‘2심은 물론이고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무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니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를 욕할 수도 없는 거다. 아니면 재판부에게 현행법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재판부를 성토했다. 반성문을 읽어야할 쪽이 되레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꼴이다. 게다가 올해 초 이미 국회에서 성폭행 법조항을 보완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해당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조차 논의된 적 없다고 한다. 이쯤 되면 국회의 ‘비판 갑질’이 도를 넘어선 게 아닌가.

한 가지 더. 현재 여성계에서는 이번 무죄 판결을 두고 “은장도라고 빼 들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2년 전 20대 총선 당선자 중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7%에 달하고, 여성 의원이 여당 대표까지 맡은 나라의 여성계에서 ‘조선시대 은장도’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니. 여성가족부야 존폐 논란에 휩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말할 나위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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