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월급쟁이 컬렉터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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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월급쟁이 컬렉터 시대가 왔다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8.05.31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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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밝게 빛났다. 47cm x 67cm x 5cm. wood, paper, drawing. 2017. 사진=더 트리니티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가 갤러리를 찾아왔다. 오래전부터 꼭 소장하고 싶은 작품이 있었는데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친한 친구들로부터 받는 축의금 봉투를 모아왔다는 것이다. 보통 신부가 친한 친구들에게 따로 받는 축의금은 혼수 준비에 도움이 될 가전제품이나 신혼여행경비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갖고 싶은 작품을 구입하는데 보태라고 친구들이 미리 모아주었다는 정성에 잔잔한 감동이 전해져왔다.

그렇게 그림 쇼핑을 처음 한 신혼부부는 얼마 후 신혼집 작은 서재에 걸어두었다는 사진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하나가 되는 시작 선상에서의 첫 소장 작품 거래는 금액대가 다른 고가의 작품을 수 점 거래하는 실적을 내었을 때보다도 필자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

아직까지도 세간에서는 '컬렉터'나 '미술품 소장'이라고 하면 특정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사치나 투기로 생각한다. 심지어는 재벌 기업의 비자금 조성을 위한 검은 돈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술품 시장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큰 돈이 없는 일반인들도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을 종종 구입한다. 심미안을 가진 일반인 고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요새 인기를 누리는 작가들도 바로 이런 일반인 고객들 덕분에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신혼집 작은 서재에 걸린 작품의 작가도 그들 중 하나다.  강예신 작가의 책장 시리즈는 작은 서재를 더욱 서재답게 만들었다. 그의 책장 시리즈는 미니어처 책 조각이 가득 찬 책장이다.  여기에는 '힐링 토끼'가 등장한다. 펜 드로잉으로 묘사된 토끼와 토끼의 친구 곰, 고양이, 소녀는 연녹색의 꽃 나무 밑에서 책을 읽거나 들판에 누워 피크닉을 즐기다 잠이 들기도 한다. 아니면 천진난만하게 졸기도 한다. 작가가 상상으로 펼쳐내는 동화적인 감성과 휴식이 담긴 작품들에는 누구나 경험해 봤을 법한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추억이 배어있다.

신혼부부는 바로 여기에 끌렸을 것이다. 책장 속 힐링 토끼는 현대인의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다독인다. 현대 도시인을 위한 공감의 코드라고 할만하다. 여러분도 그림 한 점만으로 행복의 에너지를 채워보는 게 어떨까. 강예신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감정의 잉여나 현실의 결핍 사이에 자라는 동요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 혹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일 때가 더 많다. 따뜻한 말 한마디, 나뉘어 준 마음 한 조각,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 전하는 시각의 환기. 그런 것들은 기억 속에서 느끼던 애정의 씨실과 만나면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감정의 심해에서 나를 안전하게 건져 올려진다."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박소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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