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李대통령, 제56주년 현충일 추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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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李대통령, 제56주년 현충일 추념사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6.06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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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제56주년 현충일 추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과 청소년 여러분!

오늘 쉰여섯 번째 현충일을 맞이해 조국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영전 앞에 경건히 고개 숙입니다.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의 어머니, 우리의 형과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합니다. 이 추념식에 앞서 우리는 참으로 뜻 깊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60여 년 전 두 형제가 총탄이 빗발치는 6·25 전장에서 푸르른 젊음과 소중한 생명을 나라 위해 바쳤습니다.

18세의 청도 청년 故이천우 이등중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들었습니다. 홀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한 채 형 故이만우 하사가 입대한 지 불과 한 달 만이었습니다.

형제는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서울수복작전과 평양탈환작전 등 숱한 전투에서 무공을 쌓으며 북진의 선봉에 섰습니다. 아우는 장렬한 죽음마저 형의 뒤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60여 년 찬 서리 비바람 속에 홀로 남겨져야 했습니다.

모든 병사에게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두 아들을 가슴에 고이 묻고 지난 1985년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시신마저 찾지 못해 애태우던 어머니의 눈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강원도 백석산 능선에서 故이천우 이등중사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조금 전 아우는 형 곁에서, 편안한 잠을 청했습니다.

죽음과 세월도 사랑하는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정든 고향집을 떠났던 두 형제의 애틋한 우애를 갈라놓지 못했습니다.

오늘 어머니와 두 아들은 하늘에서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오늘 두 분을 '호국의 형제'로 이름합니다.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또한 아직도 남과 북의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있을 13만 호국용사들을 잊지 않고, 마지막 유해 한 구를 찾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오늘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100년 전 신흥무관학교 학도들이 불렀던 교가처럼 '반 만 년 피로 지킨 옛 집'을 되찾고자 간도 벌판을 달리고, 철의 삼각지 능선을 붉게 물들이며 조국 수호의 선두에 서서 싸웠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며 산화한 해외파병 국군 장병들도 있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다르지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형제들이 있습니다. 오직 인류의 자유 수호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이름도 모르는 먼 이국땅에서 생명을 바친 4만여 명의 유엔군 용사들입니다.

지난해 부산 UN기념묘지를 참배하면서 저는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60년 만에 부부가 나란히 잠든 묘지가 새로 생겼습니다.

결혼한 지 3주 만에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한 호주군 용사의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평생 남편을 그리며 홀로 살다가, 한국의 남편 곁에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저는 워싱턴 D. C.에 갈 때마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찾고 있습니다. 그 공원의 기념 조각물에는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바쳤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슬픔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희생 위에 우리는 이 땅에 다시 나라를 세우고, 험한 가시밭길을 헤치며 조국의 앞날을 개척해 왔습니다.

존경하는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누구나 말로는 나라를 사랑할 수 있지만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숭고한 일입니다.

애국선열을 기리는 것은 나라 사랑의 첫 출발이자 국가통합의 초석입니다. 정부는 '보훈제도 선진화'로 나라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다하고자 합니다.

취업과 교육, 의료와 주택 등 '맞춤형 지원'을 펼쳐나가고, 보훈대상자의 노후 복지강화에 주력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또한 우리와 함께 싸운 세계의 벗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달 유럽 순방길에 덴마크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을 만났습니다. 의료선 '유틀란디아호'에 몸을 싣고 당시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이란 나라를 향해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8~90대 노인이 된 그 분들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긴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찾아와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며 오히려 고마워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전 세계의 참전용사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초청하고, UN군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에도 계속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구촌을 이끄는 성숙한 세계국가로서 인류 공동의 평화와 번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합니다.

19세기 말 이후 우리의 민족사는 거친 격랑의 연속이었기에, 무엇이 역사의 바른 길인가에 대한 논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명암 없는 역사는 없으며, 아랫돌 없이 윗돌이 올라선 역사의 탑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성취해 온 성공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미래세대가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더 큰 대한민국'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는 분명합니다. 책임 있는 자유민주주의, 공정한 시장경제, 그리고 원칙 있는 법치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피로 지킨 조국을 한 치의 양보 없이 지키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역시 보훈의 큰 뜻입니다.

지난해 북한의 도발은 우리의 안보역량을 강화하고 안보의지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며 군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전사자와 故한주호 준위의 묘소에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군 또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새로운 군대로 거듭 나기 위해 뼈를 깎는 변화에 나섰습니다.

올해 초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된 청해부대 용사들은 우리 군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며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습니다. 며칠 전 저는, 먼 바다에서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고 전원 무사히 귀국한 청해부대 용사들에게 훈포장을 수여하고 격려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한 청해부대 용사들, 살신성인의 용기를 발휘한 삼호쥬얼리호 석해균 선장은 모두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자 애국자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단호한 의지로, 국민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안전하게 지켜낼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열들이 지킨 이 자유의 땅은 자손만대가 살아갈 땅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를 번영과 평화의 복지로 만들어 우리의 후손은 물론 전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해도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의 자유와 번영을 어려운 나라와 나누는 데도 더 힘을 쏟겠습니다.

언젠가 올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 우리 국민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북은 대결과 갈등의 길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인내심을 갖고 진지하고 일관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어려울 때마다 더 큰 용기와 비전을 가지고 역사의 고비를 뛰어넘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번영과 영광의 역사를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2011년 6월 6일
대통령 이 명 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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