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오크리지서 北핵무기 해체" 미래핵 폐기까지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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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오크리지서 北핵무기 해체" 미래핵 폐기까지 시사
  • 박숙현 기자
  • 승인 2018.05.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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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핵 개발 위한 장비와 자료까지 보관돼 / 폼페이오 방북에서 北측 PVID 양보 관측
미국 테네시 주 오크리지의 Y-12 국가안보단지 사진=EPA=연합뉴스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미국 백악관이 북한의 핵무기를 과거 리비아의 경우처럼 미국 내 오크리지에서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나온 것이어서 북미 간 비핵화 원칙은 물론이고 방법을 포함한 구체적 내용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핵무기 반출 장소로 '오크리지' 지목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ABC 방송 인터뷰에서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능력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모든 핵무기를 제거해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폐기할 북핵 물질을 보관할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경우는 이번 볼턴 보좌관의 발언이 처음이다.

볼턴 보좌관이 북핵 반출 장소로 언급한 오크리지는 미국의 핵과 원자력 연구 단지가 있는 지역이다. 과거 리비아 핵 협상으로 폐기한 리비아의 핵시설과 핵물질이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3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13∼14년 전에 리비아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미국 테네시 주 오크리지의 국가안보단지 창고에 리비아의 핵 시설물을 보관하는 것과 비슷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는 이 발언으로 미루어 북핵 폐기 방식이 리비아 방식이 될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비핵화 방식과 리비아 방식이 여러 여건상 동일할 수 없다고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오크리지 언급만으로 북핵 방식을 리비아 방식이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리비아식 비핵화? 오크리지는 '원폭의 고향'

실제 리비아 핵무기 장비가 보관 중인 오크리지에는 리비아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칠레 등의 핵 물질도 이곳에 있다. 오크리지는 테네시 주 동쪽에 위치한 인구 2만9000여 명의 소도시로 미국에서는 '원자폭탄의 고향'으로도 불린다. 미 행정부는 이런 역사적 상징성을 높이 평가해 오크리지와 뉴멕시코 주 로스앨러모스, 워싱턴 주 핸퍼드 등 맨해튼 프로젝트와 관련된 지역 3곳을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단순히 리비아 비핵화와만 관련된 곳이 아니라는 의미다.

오크리지는 1942년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의 산실 중 한 곳으로 미 연방정부는 당시 핵무기에 사용할 물질을 개발하는 장소로 오크리지를 선정, 핵무기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을 조성했다. 우라늄 농축 공장인 K-25와 Y-12, 시험용 플루토늄 제조 원자로인 X-10 흑연원자로가 오크리지의 대표적인 핵시설이다.

특히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우라늄 농축 목적으로 지어진 Y-12는 2차대전 후에는 미국의 핵무기 부품 제조시설로 이용됐으며, 냉전 종식 이후에는 핵 물질과 관련 장비의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장비는 물론이고 리비아, 구소련 등 다른 나라에서 넘겨받은 핵물질을 보관 중이다. 가장 최근으로는 2010년 3월 칠레가 넘긴 고농축 우라늄도 보관 중이다.

▮우라늄 농축·플루토늄 재처리 완전 불능화

한편 볼턴 보좌관은 오크리지 언급은 북한의 비핵화 수준까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오크리지에는 리비아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관한 중요 문서,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장거리 미사일용 탄도미사일 유도장치 등 관련 장비 25t이 보관돼 있다. 핵개발에 필요한 문서와 장비를 모두 미국으로 가져와 리비아의 미래핵마저 제거한 것이다. 미국은 이 모든 것을 2004년 1월 오크리지의 핵 관련 시설로 가져와 리비아 비핵화 '1단계' 과정을 마쳤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핵무기 관련 문서 및 장비를 모두 오크리지로 가져와 북한의 미래핵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의 방북 직전 돌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PVID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박지광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논평에서 "CVID는 현재 가지고 있는 핵무기 폐기만을 목표로 한다면 PVID는 북한이 미래에 가질 수도 있는 핵무기 역시 겨냥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영구적인 핵폐기'를 CVID에 더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미는 폼페이오 장관의 최근 두 번째 방북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이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상이라는 큰 틀의 합의에 도달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볼턴 보좌관의 발언은 당시 폼페이오와의 협상에서 PVID에 대한 북측의 양보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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