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사분쟁이 남긴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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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노사분쟁이 남긴 숙제들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5.27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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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연봉 7천만원’은 명백한 거짓말…‘불법’ 없어도 보복은 있다?

[매일일보=김경탁·송병승기자] ‘제2의 쌍용차’ 사태가 될까 사회적 우려를 낳았던 유성기업 노사분규 사태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5월24일 경찰의 진압에 의해 마무리됐다. 스크럼을 짠 채 회사를 지키려 했던 조합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한 명 한 명 전경에게 질질 끌려 경찰 버스로 옮겨졌다.

자동차 엔진부품 전문기업인 유성기업은 피스톤링, 캠 사프트 등을 생산해 국내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고 40여국에 수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전체 피스톤링 물량 중 70%에 달하는 부분을, 한국GM은 부평 군산공장의 피스톤링 50%를 유성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르노삼성차 역시 SM5 2.0모델의 캠샤프트의 100%를, 쌍용차도 전체 피스톤링의 20%를 유성기업에서 제공받고 있다.

이처럼 국내 완성차 기업 대부분이 유성기업이 생산하는 주요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성기업의 직장폐쇄와 파업으로 이어진 노사분쟁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계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일개 부품업체 파업에 산업 전체 흔들린 것, 완성차업계 자업자득
‘낮은 단가’ 고집 ‘생태계 종단순화’ 방조…축산업 붕괴 위기 연상

1년 6개월 사이 자살 혹은 돌연사한 조합원 5명…“잠 좀 자자”
영업용 택시 같은 근무방식, 공장라인에 묶여 일하는 환경 잔혹

한 중소기업의 파업이 국내 완성차 업계를 뒤 흔들만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단지 한 부품을 생산해 내는 회사가 파업했을 뿐인데 ‘생산 마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유성기업이 만드는 자동차 엔진 핵심 부품인 피스톤링은 국내 점유율이 80%에 달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유성기업이 이런 핵심 부품의 독과점에 가까운 공급자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 5월24일 오후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의 파업 사태로 현대차 등 국내 차업체들의 생산차질 발생한 가운데 경찰병력이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공장정문에서 농성중인 노조원들을 연행하고 있다.(뉴시스)

종단순화와 생태계 위기

기본적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피스톤링이나 캠 샤프트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성기업이 단순 부품을 생산하면서 여러 대형 완성차 업계에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했다는 것은 단가를 낮추어 싸게 제품을 납품했기 때문이다.

다른 중소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낮은 가격으로 살아남았고 대기업 역시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은 낮은 단가의 중소기업에게만 제품을 받음으로써 다른 경쟁기업들의 도태를 방조했다.

국내 대다수 완성차 업체들은 위험성을 알면서도 부품공급을 독과점식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일로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고, 이 같은 시스템은 결국 한국 자동차산업 자의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완성차업계가 당장의 낮은 단가 때문에 부품 공급라인의 독과점화를 방조하고 부추긴 것은 현대적 시스템으로 무장한 축산업이 ‘종 단순화’를 통해 큰 수익을 남기다가 오히려 산업 자체의 붕괴를 걱정하게 된 사례를 연상시킨다.

생태계에서는 특정 생물군에 대한 ‘종 단순화’가 생물군 전체의 멸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적자생존’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 현대 생물학의 결론이다.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다양한 종이 살아남는다.

축산시스템이 닭, 돼지, 소 등을 집단사육하면서 가장 생산성이 높고 사육단가가 저렴한 품종만 남겨둠으로써 과거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한 채 넘어갔던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가축전염병이 산업 자체의 붕괴위기라는 ‘재앙’으로 확산되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쟁점은 “잠 좀 자자”는 것

▲ 5월24일 오후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의 파업 사태로 현대차 등 국내 차업체들의 생산차질 발생한 가운데 경찰병력 노조원들을 연행한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공장 내부에 노조원들이 농성중 사용하던 의류등이 널려 있다.(사진=뉴시스)
유성기업 노사분쟁의 핵심 쟁점은 ‘주간2교대제’ 도입 논란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주간근무가 잔업을 포함해 오전8시부터 오후 7시까지 11시간, 야간 근무는 오후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0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일해 왔다.

주간조와 야간조의 교대 주기는 1주일 단위로, 1주일 동안은 계속해서 밤 10시에 출근해 밤샘근무를 마치고 다음날 오전 8시에 퇴근하고, 다음 1주일 동안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7시30분에 퇴근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는 업종으로 영업용 택시기사들이 있는데, 택시기사가 그나마 근무강도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쉼없이 돌아가는 공장라인에 묶여 일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근무강도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유성기업 노조에 따르면 지난 1년6개월 사이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돌연사한 조합원이 5명에 이른다. 야간근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2009년 임단협에서 ‘주간2교대제’ 시행을 요구했다. 야간 근무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우울증,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노조가 요구한 ‘주간2교대제’는 오전 6시30분부터 업무를 시작해 오후 3시10분 1조 주간근무를 마치고 이후 주간2조가 투입돼 오후11시50분까지 근무하는 방식으로 잔업과 야간 근무시간을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노조 측과 사측은 지난 2009년 임단협에서 주간2교대제 도입을 언급했고 경제상황 및 제반 조건들을 감안해 2011년 1월1일 실행을 목표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노·사는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주간2교대제’ 도입을 두고 특별교섭을 진행했으나 서로의 입장차이가 커 의견을 좁히지 못해왔다.

‘평균연봉 7천만원’의 진실

사측의 갑작스러운 공장폐쇄와 이에 맞선 노조의 점거 농성이 시작된 이후, 언론들이 가장 크게 떠들어댄 것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노조가 파업을 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등장하는 ‘귀족노조론’이었다.

‘평균 7천만원 연봉을 받는 귀족 노동자들이 파업한다’는 유성기업의 주장은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의 22일자 성명서로 ‘기정사실’이 되었고, 최중경 지경부 장관이 23일 자동차업계 CEO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다시 전달하면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평균연봉 7천만원’은 업계 최고수준인 현대자동차보다 높은 것으로, 유성기업 파업에 대한 여론을 냉랭하게 만들었지만 ‘평균연봉 7천만원’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유성기업에 연봉 70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근속년수 25년차 이상의 노동자가 10시간 주·야 근무와 잔업 특근을 모두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유성기업 노조에 따르면 노조원의 평균 연차는 16년으로, 이 연차의 직원이 주야 맞교대와 잔업 특근을 실시했을 때 받는 금액은 약 5천만원 선이다. 또한 실제 공개된 급여명세표를 보면 8년차 노동자의 월급은 연장근로 30시간, 휴일특근 15시간, 세금, 보험을 제하기 전 기준으로 약 3천만원 수준이다.

▲ 5월24일 오후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의 파업 사태로 현대차 등 국내 차업체들의 생산차질 발생한 가운데 경찰병력이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공장정문에서 농성중인 노조원들을 연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나중에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를 짚어주는 보도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불법’은 없어도 보복은 있다

500여명의 노조원들이 연행되면서 유성기업의 파업은 종료됐다. 공장은 빠르게 정상화 됐고 시설점검을 끝낸 아산공장은 25일 밤부터 일부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유성기업이 정상화되면서 현대·기아차 등 유성기업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던 국내 완성차 업계도 25일 오후부터 멈췄던 조립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공장은 정상화됐지만 이번 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의 개입 논란이 확대 되면서 그에 따른 갈등이 예상된다.

우선 분명히 해둬야 할 부분은, 이번 유성기업 노사분쟁 과정에 이루어진 파업 그 자체는 전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합법 파업’을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대한민국에서 유성기업 노조는 5개월 동안 11차례 교섭과 1차례 조정을 거쳐 쟁의조정신청서를 내 노조원 찬반투표와 쟁의행위신고서 제출을 거쳤다.

사측의 선제적인 직장폐쇄에 맞서 파업에 돌입했지만 그나마 전면파업도 아니었고, 작업장 점거나 시설파괴는 일체 없었으며, 경찰의 진압과정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끌려간 온건하면서도 합법적인 쟁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유성기업 파업과정에 불법의 소지가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먼지털기에 나섰고, 급기야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는 정확을 포착’했다며 수사에 나설 방침임을 밝혔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성기업 노조에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여러군데 드러났다”면서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일 수도 있고 전혀 상관없는 제 3의 사람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성기업 노조가 금속노조 소속인 만큼, 금속노조가 유성기업 노사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합법적이면서 당연한 일.

그러나 조 청장은 외부세력의 개념과 범위에 대해 “금속노조 신분을 갖고 있지만 별도로 이적 단체에 가입돼 있는 등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고 밝혀 어떤 식으로든 유성기업 파업에 관련된 노동계 인사를 엮어 넣겠다는 보복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취재수첩] “경찰 이 모양이면 소는 누가 키우냐”

5월24일, 유성기업 파업 현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미 경찰병력과 사측 인원들은 회사로 향하는 도로를 봉쇄했고 출입자들 마다 일일이 검문을 했다. 다른 조합원들의 연대를 막기 위함이었다.

유성기업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봉쇄된 도로에 배치된 경찰병력을 보며 한숨을 쉬었고 더러는 월담을 하기 위해 도로를 넘었다. 마치 2009년의 쌍용자동차를 보는 듯 했다. 피를 흘리고서야 끝이 났던 쌍용차의 축소판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노조원의 4~5배수에 달하는 경찰들은 오후 4시가 되자 경고방송을 멈추고 회사 주변을 에워 쌓고, 회사 북쪽에 위치한 철조망을 굴삭기를 이용해 걷어냈다. 경찰의 진압작전은 그리 오랜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건장한 체격의 경찰들은 스크럼을 짜고 정문을 막던 조합원들을 한명씩, 한명씩 떼어냈고 경찰 버스로 옮겼다.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조합원을 바라보면 한 경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좀 그냥 편하게 가시죠. 가요 그냥.”

몸을 뒤로 눕히고 버티던 한 조합원이 “대포차로 13명 뺑소니 친 용역은 불구속하고, 회사 지키겠다는 우리는 다 연행해 가려하고. 경찰이 이러고 있으니 소는 누가 키우냐”고 말했다. 현장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유성기업 노조원 들이 경찰에 하나, 둘 끌려가던 그 시각.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13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유성엔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간 가장들 중 많은 이들이 해고되고 더러는 구속될 것이다. 그 자리는 비정규직들로 채워질 것이고 노조는 무력해질 것이다. 이것이 1년6개월 사이 5명이 야간노동으로 죽어간 현실을 바꿔보겠다고 나섰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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