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도보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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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도보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8.05.0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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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백미는 30분간의 도보다리 벤치회담이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하늘색 다리 위에서 남북 정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밀담을 나눴다.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평온한 자연 속에서 새 울음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한 편의 무성영화를 방불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손짓을 섞어 가며 무언가를 설명했고, 심각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김정은 위원장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나중에 도보다리 회담에 대해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산책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대화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수 없었는데 회담이 끝난 뒤 돌아와서 방송에 나오는 걸 보니 내가 봐도 보기가 좋더라”고 했다

그토록 집중했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영상을 지켜본 전 세계인들이 궁금했을 것이다. 청와대는 “주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고만 했을 뿐이다. 만찬을 비롯해 남북정상회담의 에피소드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지만 벤치회담 내용만은 비밀에 싸여있다. 그 만큼 중대하고도 은밀한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이라는 방증이다.

세간에서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이야기들이 오고갔을 거라고 보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희대의 협상가를 어떤 식으로 응대해야 할지,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하면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펼쳐가야 할지, 어쩌면 동북아 질서와 세계 질서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을 수 있다. 70m 남짓 작은 다리가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질서 변화의 무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판문점에는 역사적 무대로서 도보다리와 비교할 수 없는 상징성을 가진 다리가 있다. 판문점 서쪽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다. 공동경비구역(JSA)이 있는 판문점의 원래 지명은 ‘널문리’로 과거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당시 중국 측 편의를 위해 판문점으로 불렀다고 한다. 정확히는 회담장으로 변한 널문리의 작은 주막집인 ‘널문리가게’를 판문점으로 부른 것이다. ‘판자’가 곧 ‘널’이니 뜻이야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널문리 마을 서쪽에는 작은 강 사천(모래내)가 흐르고 그 위에 놓인 작은 다리가 널문다리였다. 이 다리를 통해 6‧25전쟁 포로 송환들이 이뤄졌다. 포로들에게는 한 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였다. 널문다리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이다.

이 다리에서는 북미 간 중대사건들이 많았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사천강 전투는 이 부근에서 벌어졌다. 이 다리는 1976년 8월 ‘도끼 만행 사건’ 이전 공동경비구역 내의 남북 통행이 가능했던 유일한 통로였다.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이 다리 위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이전 북한에 납치됐던 미국 푸에블로호 선원들도 이 다리로 귀환했다.

이 정도면 한반도 휴전 상황을 종식시키고 동서 냉전을 완전히 끝낼 역사적 무대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북미 정상이 핵담판을 위해서든 아니면 나중에 종전선언을 위해서든 판문점을 찾아 이 다리를 산책하며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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