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대신 감옥”…‘자유인’ 강의석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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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대신 감옥”…‘자유인’ 강의석의 선택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1.04.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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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종교의 자유’ 외치던 강의석의 두 번째 전쟁

[매일일보=김경탁·송병승기자]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던 ‘고교생 강의석’이 이슈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청년 강의석’이 꺼내든 두 번째 주제는 대한민국 사회 담론에 일종의 성역인 ‘군대’와 ‘병역’문제이다. 2008년 10월1일 국군의날 기념 퍼레이드에서 누드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은 그 시작이었다.

강의석에게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라는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그는 공언했던 바대로 입영통지를 이행하지 않았고, 서울중앙지검 형사 6부(부장검사 차경환)는 4월18일 강의석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불구속 기소된 후 강의석은 “감옥에 가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에 안 가면 감옥을 가야 하는 불이익을 매년 1000명이 감수하는 것이 우리 사회”라며 “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과연 유일한 대안인가에 대해 사회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악한 처세가, 다른 20대가 저렇게 하다가는 십중팔구 망한다” 비판에
강의석 “어쩌라고?”…갖가지 루머에 “자기들끼리 재밌게 노니 보기 좋다”

‘강의석’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얻게 된 첫 시작은 그가 고등학생이던 2004년 6월 학교의 기독교 예배 강요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제적당한 사건이다. 그가 다니던 대광고등학교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는 이념으로 세워진 미션스쿨이었다.


당시 서울지역에서만 50여 곳이 넘는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고, 대부분 평준화고교여서 무작위 추첨에 의해 학교가 배정됨에 따라 종교와 무관하게 예배참여를 강요당하는 일이 일상이었지만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강의석이 처음이었다.

첫 화두 ‘종교의 자유’

대광고 총학생회장이던 강의석은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했고 그 장소가 교육의 현실인 학교라는 게 부조리하다고 느꼈다”며 예배 거부 운동을 벌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학교 측은 전학을 권고했다. 그러나, 강의석은 친구와 후배들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학교 측은 강씨를 결국 제적처리했다.

▲ (사진=강의석 미니홈피)

그는 학교를 상대로 퇴학 처분 무효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그해 8월11일부터 9월25일까지 51일에 걸친 살인적 단식으로 맞섰다. 결국 항복 선언을 받아냈고, 이듬해 1월 퇴학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그해 강의석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2005학년도 수시모집에 합격했고, 퇴학 무효가 확정됨에 따라 합격이 최종 확정됐다. 재판부는 “학생에게 종교와 표현의 자유 등 인권이 보장돼야 하고 종교교육이 허용되는 사립학교라도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범위에서 교육이 가능하다”면서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 의사에 반해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강씨의 종교 강요 반대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2005년 10월 그는 학교법인 대광학원과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종교 활동을 강요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강의석은 소장에서 “대광학원은 개학식·졸업식에서 모든 학생에게 예배형식으로 특정 종교활동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는 등 종교·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주의 의무가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항소와 상고를 거쳐 대법원 최종심까지 이어진 손해배상 소송은 결국 미션스쿨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결정이 내려지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덤빈 싸움에서 계속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대학 그리고 자유의 만끽

대학생이 된 후, 강의석은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또래 대학생들이 1학년 때부터 취직 걱정을 하면서 스팩 쌓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삶은 확실히 남다른 모습을 일관적으로 보여왔다.

2005년 9월 그는 한국권투위원회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권투선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생활로 권투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놀라운 일임은 분명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2008년, 학교를 휴학한 그는 사람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며 3월 중순부터 한 달간 택시 운전기사로 일했고, 4월말부터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다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009년에는 촛불집회 당시 육군 재배치를 신청한 전경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계덕 등과 함께 영화 및 음반제작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하는가 하면, 신해철?김진표 등이 진행하던 TVN 이색뉴스쇼 등에서 ‘요원’(일종의 리포터 겸 기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09년 말부터 ‘강의석닷컴’이라는 심부름사이트를 운영(현재는 폐쇄)했으며, 2010년 4월에는 <친구의 누나에게>라는 제목으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면서 가수로 데뷔했고,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직접 연기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만끽해온 그가 다시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군대문제 때문이었다.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판정처분(신체등위 4급)을 받았음에도 “군대 대신 감옥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종교’와의 전쟁에 이어 두 번째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군대’ 화두 시작은 촛불집회

2008년 10월1일 국군의 날 오후, 건군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군의 날’ 시가행진 도중 그는 알몸으로 퍼레이드 행렬에 뛰어 들었다. 쿠키로 만든 소총을 들고 행렬과 탱크를 향해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그 ‘총(?)’을 먹었다. 전날 ‘반라시위’를 통해 예고했던 ‘전라퍼포먼스’를 실제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 (사진=강의석 미니홈피)
이날 현장에서 강의석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군대를 폐지하기 위해 기습 시위를 벌였다”고 외쳤다. 그는 “우리나라 군대는 우리나라 사람끼리 총을 겨누고 있다”며, “군대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강의석의 누드시위로 당일 국군의 날 시가행진 전체가 잠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강의석을 공연음란죄와 업무방해죄 현행범으로 그를 현장에서 검거, 모포로 몸을 덮어 인근 건물 안으로 데려 간 후 강남 경찰서로 연행했다.

이날 퍼포먼스는 그해 9월 대학생주간잡지 <대학내일>에 기고한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그는 박태환에게 “10월1일 국군의 날에 ‘비무장은 아름답다’는 누드 시위를 함께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 (사진=강의석 미니홈피)
강씨는 올림픽으로 병역특례를 받는 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 야구가 세계 정상이 되는 과정에서 이승엽은 ‘병역면제 브로커’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대호는 ‘병역 혜택이 걸린 준결승이 더 떨렸다’고 기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노력해서 딴 메달이 ‘징병면제’란 이름으로 선수들의 공적을 위한 하사품이 되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며 “일반인보다 전투력이 몇 배 센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힘을 써야 할 군대에서 빠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강씨는 미니홈피에 “나는 왜 군대에 가기 싫은가?”라는 글을 올려 “다툼이 싫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시합에서 선을 넘었다 안 넘었다 골을 넣었다 안 넣었다 시비 붙으면, 그냥 선 넘었다고 골 안 넣었다며 싸움을 끝냈다. 그러나 인권은 타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물대포가 쏟아지던 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전경에게 잡혔다. 머리는 샌드백이 되고 얼굴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고, 옷과 시계는 뜯어지고,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듣고. 경찰에서 풀려난 후, 군대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전·의경 문제부터 시작하여 군사제도가 가진 모순을 들춰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를 억압당하는 2년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거니와, 군대에서 총을 들고 살상의 기술을 훈련하여 전쟁에 소용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기자수첩] ‘금기’ 없는 자유로운 영혼

감옥 생활에 영혼 다치지 않고 나오기를…

“서해교전 전사는 개죽음” 발언으로 사회적 파문 야기

‘강의석 안티카페’에 ‘군대에 보냅시다’ 온라인 청원도

2008년 9월20일, 강의석의 미니홈피를 찾은 한 네티즌이 “서해교전에서 전사하신 분들도 개죽음을 당한 것이냐”면서 그를 비판하자 강의석은 “응 개죽음을 당한 거야”라는 댓글을 달았고, 이어서 ‘서해교전 전사자들은 개죽음을 당했는가’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행위는 애국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 보람 없이 죽었다”고 주장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겠지만, 그들의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상대 또한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전쟁의 위험이란 결과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앞서 언급된 국가대표 수영선수 박태환을 향해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며 올림픽금메달리스트에 대한 병역면제혜택 비판글과 함께 서해교전 관련 글은 큰 파문을 낳으면서 수많은 안티세력을 만들어냈다. 인터넷에 강의석 안티 카페가 만들어졌고, ‘철부지 휴학생 강의석을 군대에 보냅시다’라는 온라인 청원도 진행됐다.

강의석이 ‘군대’와 ‘병역’이라는 주제를 알리는 한 수단으로 유명인 ‘박태환’의 이름을 이용한 것에 대해서도 많은 네티즌들이 “자기는 군대 가기 싫다고 하면서 박태환에게는 왜 군대를 가라고 하는 것이냐”는 식으로 오해하면서 주장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 (사진=강의석 미니홈피)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한명인 박권일은 “고등학교 때의 운동경력을 훈장 삼아 대학에 진학하고, 언론플레이에 능한 영악한 처세가”와 “세계평화라는 어마어마한 고민을 개인의 행복이라는 작은, 그러나 실존적인 고민으로 단번에 환치할 수 있는 포스트모던한 주체”라는 양면성으로 강의석을 분석했다.

박권일은 특히 “행복하게 잘 살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른 20대가 저렇게 하다간 십중팔구 망한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현재 서울대 법대를 다니는 사람만 구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일 뿐”이라는 비아냥도 던졌다.

박권일의 ‘비판’에 강의석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나를 따라 하지 말라는 건가 아님 뭔가? 노선이 좀 불분명하다”고 반응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밑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루머에 대한 그의 생각도 “자기들끼리 제 욕하면서 재미있게 노니 보기 좋다”는 쿨(?)한 것이었다.

서해교전과 올림픽메달에 대한 병역혜택에 대한 일련의 거침없는 발언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강의석은 가볍고 자유롭다. 그의 생각과 말에는 아무런 금기도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오해와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건강상의 이유로 권투를 포기한 그의 두 번째 인생 계획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자유를 속박하는 감옥생활 경험 이후에도 그가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영화감독’ 강의석이 만드는 영화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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