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투'에 소송으로 대적해서야
상태바
[기자수첩] '미투'에 소송으로 대적해서야
  • 박규리 기자
  • 승인 2018.03.28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박규리 기자]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소송을 27일 밤 돌연 취하했다. 성추행이 일어난 것으로 지목된 2011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그가 사용한 카드 사용 내역을 찾아냈다는게 이유였다.

정 전 의원은 "결제내역이라는 명백한 기록이 저의 당일 렉싱턴 호텔 방문을 증거하고 있는 이상 이를 스스로 공개하는 것만이 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길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기억이 없는 것도 제 자신의 불찰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28일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정 전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이 잡혔던 지난 7일 그가 기자 지망생이었던 A씨를 성추행했다는 의혹 기사가 터져 나왔다. 이후 일주일만인 13일 그는 기사를 쓴 기자들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고소하게 된다. 허위사실공표죄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에서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는 등 일반적인 형법상 명예훼손죄보다 형량이 높다.

그사이 기사 내용 중 사건 일자가 23일 그 다음엔 24일 또 23일로 바뀌고, 정 전 의원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일자에 780장의 사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정 전 의원을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미투를 외친 피해자에게 실물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사진은 해당 기사의 진실공방 논란과 함께 여러 카페와 블로그에 전시돼야 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미투 피해자들에게 얼굴을 드러내면 믿어주겠다고 하는 사회가 과연 올바른 사회일까? 날짜와 시간, 장소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정확하지 않으면 미투라고 외치지도 못한단 말인가? ‘얼굴 없는 미투’를 보듬고 용인해줘야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자행되는 그 어떤 유형의 성폭력도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현재 일어나는 미투의 양상을 보면 대부분이 공위공무원, 연예인, 정치인에 한정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공인으로서의 위치를 누리면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즉 경찰에 가서 호소도 못할 정도로 무형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후 호소할 길을 못찾던 사람들이 미투운동을 계기삼아 용기를 냈다. 차별적 권력관계 하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건 어쩜 경찰에 찾아가는 것보다, '나도 당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일지도 모른다.

물론 미투운동의 부작용은 엄청나다. 한때는 나도 미투를 바라보며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만약 자신을 향한 미투에 억울하다면 충분히 호소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 범죄에 있어 '친고죄' 조항이 폐쇄됐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경찰조사에 성실히 응하면 된다. 언론을 통해 재반박도 환영한다. 다만 미투 호소자들과 그들을 돕는 자들에게 소송으로 일관하며 다시금 권력관계를 위시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윗물이 맑아져야 아랫물도 맑아지듯 미투운동으로 인한 자각효과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 무분별한 미투운동의 부작용을 우려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고 경청할 만한 의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속속 밝혀지고 있는 내용들을 보자면 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 필요성은 명백하다. 어는 누구든 미투운동을 "체제 안에 잠복한 차별을 폭로하고 그 자체를 변혁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봤다. 그래서 미투운동은 21세기형 인권혁명이라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