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서산 명종대왕 (胎室) 및 비(碑) 보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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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서산 명종대왕 (胎室) 및 비(碑) 보물 지정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8.03.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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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瑞山 明宗大王 胎室 및 碑)'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6호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조선 왕실에서는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胎)를 태항아리에 봉안하고 태실을 조성했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 13대 왕 명종이 태어나던 1538년(중종 33년)에 의례에 따라 건립됐다.

태를 봉안한 태실과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1기가 먼저 건립되고, 명종이 즉위한 후 1546년 ‘주상전하태실비’ 1기를, 1711년 ‘주상전하태실비’를 재건하면서 비석 1기를 추가로 건립해 현재 총 태실 1기와 비 3기가 전한다.

명종대왕태실 <문화재청>

 태실은 8각형의 난간석 중앙에 배치됐다. 태실의 머릿돌은 8각의 개첨석(盖簷石), 받침돌은 사방석(四方石)이고 몸돌은 중동석(中童石)으로 구분된다.

태실에 봉안되었던 태항아리(태호, 胎壺)와 지석(誌石)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경 일제에 의해 경기도 고양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겨졌다가, 이후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보관하고 있다.

태실과 함께 만든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大君椿齡阿只氏胎室)’는 비석 받침인 비좌(碑座)와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 비신 위에 올리는 옥개석인 이수(螭首)로 구성됐으며, 조선 전기에 건립된 태실 표석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췄다.

조선 왕실의 많은 태실이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졌거나, 변형된 경우가 상당한 데 비하여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왕조실록등에 관련 기록이 상세히 전해져 있고, 원래의 자리에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서 주변 지형 등 환경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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