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노사대등' 원칙 못 박고…'검사 영장청구' 조항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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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개헌안, '노사대등' 원칙 못 박고…'검사 영장청구' 조항 삭제
  • 윤슬기 기자
  • 승인 2018.03.2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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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위임 최소화 국회의 기본권 제한 차단 / 근로조건 개선 벗어나 노동권 전면 보장 / 영장조항 등 과거 독재정권 잔재 청산 박차 / 직접민주제 도입하면서도 촛불혁명은 제외 / 전면개편 수준 사용자와 보수세력
청와대가 20일 문재인 정부의 10차 개헌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윤슬기 기자]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현행 헌법에서 하위법률에 대폭 위임했던 기본권을 직접 헌법에 규정, 국회의 입법 재량권을 축소하고 있다. 정치적 타협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현행 헌법에 명시된 검사의 영장청구 조항을 삭제한 것도 방식은 정반대이지만 취지는 마찬가지다.

이번 개헌안에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 도입과 같은 직접민주주의 요소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노동권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근로'라는 표현 대신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를 상징한다. 한편 헌법 전문은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명시했다.

▮부마, 5‧18, 6‧10 개헌안 전문에

이날 발표된 정부 개헌안 전문은 현행 헌법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현행 헌법 전문의 자구는 그대로 유지하되 새 헌법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추가 삽입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 현행 헌법전문에 포함돼 있는 3.1운동과 4.19 혁명정신 외에도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발전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은 광주를 찾아 5‧18의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자문위도 전문에 5‧18 정신을 반영하는 방안부터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논의가 진행되면서 5‧18 정신이 전문에 담을 경우 부마항쟁과 6‧10항쟁도 전문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촛불항쟁'은 담기지 않았다. 촛불항쟁은 비교적 최근 사건으로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과 박근혜 정권의 몰락 및 문재인 정부의 수립과 맞물려 있어 문재인 정부 개헌안에 그 내용을 담는 것이 적합한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논의 끝에 결국 전문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헌법 개정안에서는 배제됐지만 촛불항쟁 역시 향후 역사적 평가를 거친 후 개헌과정에서 전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시

대통령 개헌안에는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양극화 해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우선 노동조건의 결정 과정에서 힘의 균형이 이뤄지도록 '노사 대등 결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노동자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점도 명확히 밝혔다. 일각에서는 임금·복리후생 등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구조조정과 인사불만이 있을 때도 합법적으로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는 빗장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한 공무원에게도 원칙적으로 노동 3권을 인정하는 한편,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게 했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고용안정'과 '일·생활 균형'에 관련한 국가의 정책 시행 의무도 신설했다. 여기에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수준의 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 개헌안이 노동권을 크게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자 경영계에서는 기업 경영환경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국내 기업은 지난해 현 정부 출범 후 일반해고 기준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 완화 등 '양대지침' 폐기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여기에 '친(親)노동' 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다.

▮검사 영장청구권 삭제

대통령 개헌안에는 현행 헌법조항 중 검사의 영장청구권 등 일부 조항이 삭제됐다. 현행 헌법 제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이 헌법에서 삭제된다 하더라도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인정하는 현행 형사소송법은 그대로 유효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영장청구 주체와 관련한 내용이 헌법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를 댔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영장청구의 주체를 경찰에 넘기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헌법이 막고 있던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수면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13일 국회 사법개혁특위에 출석, 독립기구로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청와대와 상반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영장청구권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이중으로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유지돼야 할 실효적 사법통제 장치"라며 "이를 제한하거나 폐지하자는 입장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소환‧국민발안 도입

현 정권이 촛불혁명으로 인해 탄생한 만큼 이번 대통령 개헌안에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도 대거 포함됐다. 청와대는 직접민주제의 대폭 확대가 기존 대의제를 보완하는 한편 민주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국민이 부적격한 국회의원을 임기 중 소환해 투표로 파면할 수 있게 한 제도이며, 국민발안제는 국민이 직접 법률안이나 헌법개정안을 발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헌법에 국민소환제가 포함되지 않은 탓에 그간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법원에서 유죄확정 판결을 받지 않는 이상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아 '특권'을 누려왔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또한 국민발안이 인정되지 않은 탓에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국회에서 입법발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방법이 없었다. 개헌안은 국회의원 국민소환과 국민발안의 구체적 요건은 국회가 논의해서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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