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정운찬, ‘정국의 핵’에서 ‘계륵’으로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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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정운찬, ‘정국의 핵’에서 ‘계륵’으로 몰락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3.25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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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변주리 기자] 신정아가 돌아왔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 학력위조 사건 등으로 2007년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가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한 자전 에세이집 『4001』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신정아가 사건 전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소상히 해명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회와 용서를 비는 내용이 담겼다.

예일대 박사학위 수여의 전말은 물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정치권 배후설, 일부 인사의 부도덕한 행위까지 언급돼 있어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파문의 중심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전 국무총리)이 서 있다.

신정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신개념 동반성장 방식과 4?27 재보선 분당을 지역구 출마 여부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라있던 정운찬이 이제 ‘계륵’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정아 “정운찬 총장, 존경받고 있는 이유 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

정운찬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노이즈 마케팅 불과…책 내용 믿지말라”
도덕성 논란 정운찬 그대로 두기도, 그렇다고 사퇴시키기도 곤란한 靑

신정아의 『4001』이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신정아 사건은 한국 지도자 계층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우울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또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한 여성의 자기과시욕에 휩쓸린 분들도 참 한심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신정아 파문 논란의 중심이 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무슨 내용 담았기에…

▲ <사진=사월의책>

신정아는 이 책에서 서울대 교수직 제의와 관련해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운찬이 서울대 미술관장직과 교수직을 제의했으나 자신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신정아사건’이 터졌을 당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신정아에게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한 일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는데, 이를 반박한 것이다.

신정아는 “내 사건이 터진 후 정운찬 당시 총장은 스스로 인터뷰에 나와서, 나를 만나본 일은 있지만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직은 제의한 적은 결코 없다고 해명을 했다”며 “서울대 교수직이나 관장직 얘기는 둘째 치고, 자신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렇게 먼저 내 문제를 스스로 들고 나와서 극구 부인하는 모양이, 켕기는 것이 있으니 저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신정아는 “나는 정말이지 그 상황이 우스웠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소름끼치게 무서웠다”며 “검찰이 무엇을 하는 집단이며 재판은 왜 하는지, 죄는 무엇으로 가리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신정아는 또 정운찬이 밤늦은 시간에 호텔 바에서 만나자고 하는 등 자신을 처음부터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 총장은 나로 하여금 저절로 조심하는 마음이 들게끔 자꾸 빌미를 만들어 냈다”며 “언론을 통해 보던 정 총장의 인상과 실제로 내가 접한 정 총장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달랐다’의 의미는 혼란스러웠다는 뜻”이라고 털어놓았다.

신정아는 “서울대 총장이란 이 나라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자리”이지만 “정 총장이 ‘존경’을 받고 있다면 존경받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도 촌평했다.

정운찬 “노이즈마케팅”

▲ <사진=뉴시스>

『4001』의 내용이 공개 된 후 파문이 일자 정운찬은 22일 한 매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말이 돼야 대꾸를 할 것이 아닌가”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책을 팔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에 불과하다”며 “책 내용을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정아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가 사면초가에 몰린 것은 분명하다.

당장 여론 악화로 분당을 보궐선거에서의 전략공천 가능성마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직 등 거취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정아의 폭로로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정운찬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위축되면서, 동반성장위원장을 계속 맡을 수 있을 지와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 핵심정책인 동반성장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정운찬이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직에 사의를 표명했을 당시 “정 위원장이 계속 동반성장위원회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며 만류했지만, 신정아 파문 이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그에게 위원장직을 계속 맡기자니 여론의 반발이 예상되고, 그의 사퇴를 받아들이자면 미묘한 시기적 특성으로 인해 청와대가 나서서 신정아의 주장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주류 측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27 재·보궐선거의 분당을 ‘전략 카드’로 정운찬 영입론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신정아 파문으로 정운찬의 도덕성까지 흠집이 날 경우, 마냥 정운찬을 감쌀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내분


당장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정운찬 영입론’에 대한 반발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전략공천을 반대해 왔던 세력을 중심으로 주장된 정운찬 ‘불가론’이 신정아 파문으로 힘을 얻은 것이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24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운찬에 대해 “이번 신정아 파동으로 계륵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나 그쪽에서는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는지 모르나 선거를 해야 되는 당으로서는 (정운찬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며 “선거 민심이 특히 주부층들이 분노를 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최고위원은 또 “친이계 핵심 쪽에서 정 전 총리를 (분당을 후보로) 미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밀어본들 선거 민심을 모르고 하는 것이므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홍 최고위원은 “그분은 애초부터 안 된다고 봤다”며 “정책적으로 실패한 총리이고, 한나라당이 왜 자신이 없어서 그런 분을 영입하려고 하는지 참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분당을 예비후보 중 가장 유력한 강재섭 전 대표도 분당을 예비후보 공천심사가 있던 21일, 후보자 면접에 앞서 전략공천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게 “내가 누구보다 지지율이 높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그런 것은 상상할 수 없고, 물 건너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불거지는 진실 공방

하지만 정운찬 영입론을 주장해왔던 이들은 정운찬 카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정운찬 구하기’에 나섰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24일 “신씨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 사람의 말을 믿는가”라며 “에세이집을 출간하면서 정 위원장을 상술에 이용한 것”이라고 정운찬을 감쌌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신씨가 정 위원장을 물고 늘어진 것을 두고 어느 누가 진정성이 있다고 보겠는가”라며 정운찬을 엄호했다.

일각에서는 신정아가 정치적 의도를 품고 책을 펴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4·27 재보궐선거와 맞물리는 시점에 책이 나온 것이 의혹을 증폭시킨 것이다.

하지만 곧 신정아 측은 소설 같은 황당한 이야기라고 반박에 나섰다. 신정아의 법적 대리인인 법무법인 바른은 24일 “신씨의 책과 정치권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놀라울 정도”라며 “말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반박했다.

바른 측은 “책 전체의 내용은 보지 않은 채 일부 자극적인 내용만 가지고 소설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앞서 『4001』의 출판사인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도 22일 “수개월간 검토를 마쳤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주성 ‘부부핵교’ 대표는 24일 “신씨의 이번 폭로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러브 스토리 차원이 아닌 일방적인 성추행을 암시하는 국민적 관심사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직접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다”며 ‘두분 토론’을 제안했다.

정운찬의 운명은?

정운찬은 23일 예정됐던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초청 특강에 참석하지 않는 등 현재 동반성장위원장 자격의 일정은 모두 취소한 상태다. 동반성장위원장직 사의를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날 청와대에서 열리는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행사에는 이 단체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동반성장위 일정이 아닌 일정은 예정대로 소화하며 ‘분리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선 오는 28일이 정운찬의 거취 등 향후 행보를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동반성장위의 제4차 회의가 예정돼 있어 이날 회의 개최 여부에 따라 전망을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핵심부에선 그동안 차기 총선과 대선까지 다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카드로 정운찬에게 무한 신임을 보내왔다.

정운찬이 지난해 7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폐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아까운 사람이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에도 청와대나 여권 핵심부가 정운찬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에선 조심스럽게 기류 변화 조짐이 보이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23일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한 핵심참모는 “동반성장위는 순수 민간기구인 만큼 민간위원들이 호선해서 뽑게 돼있으므로 대통령에게는 임면권이 전혀 없다”면서 “그래서 대통령한테 사표를 낼 일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신정아씨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말과 함께 ‘상황이 고약하게 됐다’는 얘기가 함께 나온다”면서도 “내부에서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시간을 갖고 좀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24일 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 전 총리의 후보 영입론은 이미 물 건너갔다”며, “그러나 동반성장위는 아직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고 말해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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