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와이즈베리,옛글에서 뽑은 삶의 순간들 '고전의 시선'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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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와이즈베리,옛글에서 뽑은 삶의 순간들 '고전의 시선' 발간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8.03.06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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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미래엔와이즈베리에서 옛글에서 뽑아낸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담아낸 송혁기지음<고전의 시선>을 출간했다.
 
“궁궐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밖에서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아닙니다만, 총애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하께서 감추시면서 이 사실을 지적한 신하를 다른 죄에 얽어서 처벌하셨다고들 합니다. 전하께서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슨 문제가 되겠으며, 무엇하러 그것을 숨기시겠습니까. 그래서 신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억측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겠습니다. 새어나온 사실들만도 이러한데, 저희의 이목이 닿지 않는 궁궐 깊숙한 곳의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미래엔 와이즈베리 '고전의 시선’ 표지

지금으로부터 330년 전에 쓰인 상소문을 새롭게 번역한 내용의 일부다.

흔히 ‘한문’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유교 이념으로 가득하거나, 우리와 크게 관련이 없고 시대에 동떨어진 글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우리말과 통사 구조가 다를 뿐 아니라 시대 배경과 사유 방식, 문체, 관습까지 너무나 달라서 우리에게는 어떤 외국어보다도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궁궐’을 ‘청와대’로, ‘전하’를 ‘대통령’으로 살짝 바꾸면 지난해 온 나라를 분노하게 만든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서늘한 전율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한문으로 쓰인 옛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와이즈베리 신간<고전의 시선>은 1,000년 넘게 쌓인 우리 한문 산문 명편들 가운데 24편을 엄선하여 현대에 맞는 평설과 함께 원문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해설을 담았다. 이 책은 사회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아들을 잃은 슬픔, 늙어감에 대한 감회 등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번뜩이는 통찰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

<고전의 시선>에는 옛글을 요약하거나 풀어 쓰면서 우리의 현실 문제에 적용한 작품도 있고, 옛글의 특정 부분을 확장하거나 초점을 달리해서 새롭게 접근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결합 방식을 취하긴 했지만, 오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옛글에 이미 나와 있는 것처럼 교훈을 찾는데 급급하거나 무리하게 의미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저자는 단순히 문학 분야에만 제한을 두지 않고 좁은 의미의 수필 문학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논설문, 기사문, 상소문, 편지글, 송별사, 묘지명, 제문, 서문 등 다양한 방식의 옛글을 소개한다. ‘좋은 글’이란 허구가 배제된 서사, 설득을 위한 논설, 실용적인 공문서 가운데도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고전에 기대어 올라섰을 때 열리는 새로운 시선이 독자로 하여금 새 글과 옛글 사이의 겹침과 균열 혹은 긴장을 발견하고 나름의 해석에 이르기를 기대한다.

본문중에서--

빠르게 보면 정밀하지 못하고 천천히 보아야 미묘함까지 다 볼 수 있다. 말은 빠르고 소는 느리니, 소를 타는 것은 천천히 보기 위함이다. 밝은 달이 하늘에 있으면 높은 산 너른 물이 위아래로 하나의 빛깔로 보여, 올려보아도 굽어보아도 끝이 없을 것이다. 만사를 뜬구름같이 여기고 휘파람을 맑은 바람에 날리며 소가 가는 대로 내맡겨두고 마음대로 혼자 술병 기울이면 가슴이 툭 트여 그 즐거움이 절로 함께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사사로운 일에 얽매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소를 타는 즐거움’ 중에서 / 15~16p

우리의 기쁨은 대개 무언가 바라던 것을 손에 얻었을 때 주어지지만, 문제는 그 기쁨이 지속되지 못하는 데 있다. 얻기 전에는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노심초사 근심하던 대상임에도, 막상 내 것이 되고 보면 그 기쁨도 잠시뿐, 마치 원래부터 나에게 있던 것처럼 당연시한다. 그러고는 점차 그것이 없는 삶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 근심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즐거워하며 뜻을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벼슬의 유무에 따라 기쁨과 근심이 바뀔 일도 없겠지만, 이런 경지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근심과 즐거움’ 중에서 / 53p

책을 펼치면 생각나고, 밥과 술이 있으면 생각나고, 옛사람의 좋은 시문을 읽으면 생각나고, 의논할 일이 생기면 생각나고, 집에 드나들다가 너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를 보면 생각나고, 멋진 산수를 만나면 생각나고, 풀 돋고 꽃 피면 생각나고, 바람 맑고 달 밝으면 생각나고, 꾀꼬리 지저귀고 매미 맴맴 대고 기러기나 학이 우는 소리 들리면 생각난다. 무슨 일을 만나든 어떤 상황을 접하든 어찌 네 생각이 나지 않겠느냐. 슬픔은 그래도 억제하여 너무 심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할 수가 있지만, 사물을 보고 우연히 일어나 끝없이 맴도는 생각까지야 내가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느냐. -‘이 조그만 노란 리본’ 중에서 / 153p

뱀은 악한 짐승이다. 큰 뱀은 악함도 크고 작은 뱀은 악함도 작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큰 것은 크다는 이유로 죽임을 면하고 작은 것은 작다는 이유로 도리어 죽임을 당했구나. 이런 일이 어찌 뱀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사람도 크게 악한 자는 그 큼으로 인해 힘을 지니게 되니, 작게 악한 자만 죽임을 당한다. 선에서는 반대다. 크게 선한 자는 알려지지 않고 작게 선한 자만 알려진다. 그러니 크게 충성스러운 자는 상을 받지 못하고 작게 충성스러운 자만 상을 받으며, 크게 현명한 자는 등용되지 못하고 작게 현명한 자만 등용된다. 이것이 선과 악, 크고 작음의 행복과 불행이 아니겠는가? -‘큰 악과 작은 악’ 중에서 / 190p 

 와이즈베리 ㅣ 고전의시선 ㅣ 송혁기 지음 ㅣ240쪽 | 14,000원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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