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 “하는거야? 마는거야?”
상태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 “하는거야? 마는거야?”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7.04.27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개혁연대 “지배구조 개선 의지와 능력 의문”…현대차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

연대 “지배구조 개선, 총수 형사판결 이후로 미뤄선 안돼”
“개선의지 확인할 수 없을 때 곧바로 대표소송 제기” 주장
현대차 “조금씩 변화 있을 것, 소극적 아니라 적극적” 반박

[142호 경제] 경제개혁연대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말했고, 한 애널리스트는 “지배구조 개선 노력 지체 등이 맞물리며 장기 투자자들의 외면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벌개혁운동에 앞장서고 주식투자분석을 이끌고 있는 두 경제전문가로부터 이런 ‘형편없는’ 평가를 받은 현대차그룹은 지난 달 27일로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총수인 정몽구 그룹 회장이 검찰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은 지 만 1년째를 맞이했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5월 정 회장이 현대차 계열사를 통해 1천3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그 중 696억원을 횡령하고, 또 외아들이자 그룹 후계자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경영권 승계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그룹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정 회장을 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밖에 정 회장은 현대우주항공에 대한 자신의 연대보증 채무를 피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토록 하는 수법 등으로 현대차 및 계열사에 모두 4천여억원의 손해를 입힌 것으로 밝혀져, 현대차는 당시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위기설’에 직면해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지배구조개선’ 가능성이 점쳐졌었다.

그러나 업계와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9일 정기주총을 통해 정관을 개정해 계열사간 내부거래 문제를 다룰 윤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사외이사 수를 늘리는 등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배구조개선’과 관련해선 이렇다 할 성과없이 지지부진하고 있다는 지적를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팀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은 후진적 지배구조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사실상 아무런 성과없이 지난 1년여의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또 “SK그룹, 두산그룹 등이 신속하게 지배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한 것과 달리, 현대자동차그룹은 지지부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SK와 두산그룹 등 여타 그룹들이 총수일가의 형사문제를 겪으면서 비교적 신속하게 지배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지지부진해 ‘과연 지배구조 개선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는 주장이다.

정몽구 회장은 1심에서 실형 3년을 선고받고 곧바로 항소,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3월27일 정 회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있었는데, 정 회장측은 “법원이 3년 형을 선고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검찰 또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선고형량이 가볍다”며 각각 항소했다. 정몽구 회장 변호인측은 일단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지배구조 개선 의지 과연 있나 =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현대자동차측이 투명경영과 부당 내부거래 등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윤리위원회를 가동했지만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9일 등기이사 외에 외부인 2명이 참가하는 윤리위원회 추진안을 승인했고, 외부인사는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법조인과 회계전문가 중에서 위촉한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차의 윤리위원회라는 것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 소속의 위원회가 아니라, 사외이사, 외부전문가, 회사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 외부의 기구라는 점에서 권한과 책임에 있어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고 주장했다. 최한수 팀장은 “현대차의 경우 내부거래가 문제이지만 윤리위원회는 법적인 아무런 권한조차 없어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특히 “1심 판결에서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쳐 유죄판결을 받은 인사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다시 이사로 선임하고, 정몽구 회장의 불법행위로 인한 회사의 손해, 또 현대우주항공과 현대강관과 관련된 배임혐의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에 대한 편법 재산물림’ ‘경영권 편법 승계 수단’ 등으로 계속 비판받아 온 글로비스, 본텍, 이노션, 엠코 등의 회사기회의 유용 문제 역시 “지난 1년 동안 개선된 것이 전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사전 영장이 청구되던 지난 4월을 전후로 글로비스, 엠코, 이노션, 본텍 등 비상장계열사 ‘몰아주기’를 통해 정의선 사장 지분승계를 서두르고 있다는 의혹을 줄곧 받아왔다.

지난해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 중 쟁점사항이었던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란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이사 자신이나 제3자가 취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비자금 조성으로 물의를 빚었던 현대차 그룹의 글로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현대차의 운송 등을 담당하는 물류업체로 현대차 총수인 정몽구 정의선 부자가 최대 주주인 글로비스에 사업기회를 몰아줘(일감을 줬다) 글로비스가 성장했고, 결국 지난 2005년 12월 상장 당시에 1조원이 넘는 평가차익을 정 회장 부자에게 안겨준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글로비스 등과 같은 재벌기업 계열사들이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에서 제외돼 ‘편법 승계’에 대한 규제 장치마저 사라질 것으로 보여, 정부와 일부 재벌기업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최 팀장은 “결론적으로 지난 1년 동안 현대자동차그룹이 한 것은 정치권과 재판부, 그리고 여론의 동정을 사기 위한 로비작업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로비작업의 실체에 대해선 “일종의 비유”라며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 지난 1년간 뭐했길래 ‘지지부진?’ =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년 사이에 물류계열사 글로비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공정위로부터 조사를 받아왔다. 최근에는 사전 통보조차 없이 국세청으로부터 글로비스 등 4개 계열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까지 받았다.

또 내부적으로 고질적인 노사관계 갈등도 현대차를 괴롭히는 요인이다. 1987년 노조 설립 후 현대차 노사는 ‘강성노조의 대명사’라는 타이틀 속에서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을 반복해왔다. 올해는 현대차 노사관계가 ‘예년과 다를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지만, 다가올 ‘춘투’에서 노조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납품비리로 임기를 9개월 남기고 불명예 퇴진한 노조 집행부를 대신한 이상욱 신임 노조지부장은 강경파이자 자주계열로 알려진 ‘민투위(노동자의 힘)’ 소속이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올해부터 그룹의 주요사업장의 상급단체를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로 가입해 최상위단체인 민주노총과 연대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측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의 ‘영업부진’도 현대차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갈수록 태산”이라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요소로 꼽힌다.

지난 달 22일 대우 삼성 신영증권 등 주요 증권사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1분기 282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71% 줄어들었다. 매출액도 6조6218억원으로 3.49% 감소한 것으로 예상했다.

박영호 대우증권 연구원은 “국내외 승용차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현대차 판매가 부진했다”며 “판매실적이 당초 목표치에 미달했기 때문에 영업이익률도 4%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와 관련 “현대차의 경우 주가 상승을 예견했지만 결과는 딴판으로 나오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라며 “1분기 실적 악화, 다가올 춘투, 지배구조 개선 노력 지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현대차의 입장에선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며 항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선을 바라보는 사회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지부진함은 모든 의사결정을 정몽구 회장의 형사재판 일정 및 그 결과에 맞추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며 “이 같은 판단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단적으로 단지 총수의 법정 구속을 피해갈 요량으로 아무런 준비없이 제안된 글로비스 주식의 사회공헌 약속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총수의 형사재판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유의미한 노력과 실천이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이에 따라 총수의 재판결과와 무관하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한수 팀장은 “현대차그룹이 지금처럼 총수의 사법처리 결과에만 연연해 지배구조 개선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경우 주주가치 제고와 회사의 손실 보전을 위해 주주대표소송 제기 등 필요한 법적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향후 전망은? 현대차 “기달려달라” = 지난 달 17일 속개된 정몽구 회장과 최측근인 김동진 부회장의 공판에서 현대우주항공과 현대강관과 관련한 배임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다음 재판을 오는 22일 열기로 한 상태다.

현대차 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정몽구 회장이 저지른 횡령과 배임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줘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향후 산별노조로서 기능과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올해 초 현대차그룹에 ▲그룹 계열사의 정관 개정 ▲회사기회 유용 문제 해결 ▲불법행위 관련자에 대한 민사상 인사상 책임 추궁 등과 관련해 구체적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현대차가 이 같은 노동계 및 시민사회단체의 바람대로 항소심 판결 이전에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들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한 기업 전문가는 “여태껏 현대차가 해오지 않았는데 앞으로 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보인다”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측의 생각은 반대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한다는 나름대로의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 한 관계자는 “외견상 지배구조 개선을 서두르는 것이 제일 좋아보이겠지만, 시간을 두고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윤리위를 설치하고 사외이사를 늘리는 것들은 시스템적으로 봤을 때 일차적인 것들이고 추가적으로 새로운 사안들을 진행할 예정인데 시민단체쪽에서 볼 때는 지난 1년 간 만족할만한 획기적인 결과가 없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현대차 홍보실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유럽시장을 방문하는 등 외부적으로 글로벌하게 움직이고 있고, 국내에서는 공판이 진행 중인 까닭에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선은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이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