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vs 개신교 ‘수쿠크법’ 전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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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vs 개신교 ‘수쿠크법’ 전면전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3.0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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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차의 돈키호테 혹은 외로운 투사…대결의 끝은?

[매일일보=변주리·김경탁 기자]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와 개신기독교계(이하 개신교)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발단은 개신교 측이 정부에서 추진해온 이슬람채권법(일명 수쿠크법) 입법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던 와중에 대통령에 대한 하야운동과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을 거론하면서 시작됐다.

개신교 측이 수쿠크법에 반대하는 대외적 명분은 “수쿠크 도입=이슬람 율법 ‘샤리아’ 상륙=테러조직 국내 유입”이라는 3단 논법으로 요약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슬람교의 국내 포교활동을 촉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본질적인 이유라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수쿠크에 대한 면세혜택이 다른 외화채권에 비해 면세혜택이 크기 때문에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개신교 측의 주장은 그 진실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은 둘째치고서라도 한국의 기업화된 대형교회에 대한 ‘과세 시도’가 번번히 무산되어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하지만 대형교회들이 한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개신교 측이 그렇게도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법안을 정면으로 추진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있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거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이회창 대표와 개신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양상은 어찌보면 신선하다고 할 수도 있고, 또 어찌 보면 무모해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개방향이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회창 “대형교회가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자만심으로 하야 운운
권력화된 교회의 오만한 단면, 국민의 존경과 신뢰에 금가는 행동”


‘대통령을 위한 기도 시민연대 “이회창, 사과하고 정계를 은퇴하라”
“국가 지도자급 종교지도자 폄하, 기독교 전체에 도전…묵과 안돼”

지난달 24일.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정부가 이슬람채권법안 입법을 계속 추진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날 조 목사는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한국교회협의회 이영훈 회장 취임 감사예배에서 “정부에서 이슬람 지하자금을 받기 위해 이슬람을 지지하는 일이 생기면 철저히 이 대통령과 현 정부와도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사진=뉴시스>

정치권, 개신교 압박에 깨갱?

2월 임시국회 개회를 앞둔 지난 2월17일,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특별한 과세특례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 종교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이슬람 채권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의 야당 위원들이 정부 측 의견을 받아들인 것에서 부정적 입장으로 급선회 한 것이다. 정 의장은 또 “이슬람 채권법이 UAE 원전 수주에 따른 장기자금 조달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며 이슬람 채권법안과 UAE 원전 수주를 결부시키기도 했다.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당론화하면서 소관 상임위원회에서의 논의가 힘겨워지게 되자 한나라당도 백기를 들었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22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이슬람채권법을 이번 임시국회에 처리하지 않기로 당론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슬람채권법안의 형평성 문제와 UAE 원전수주 의혹 문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입장을 변화시킨 대외적인 요인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이슬람을 배척하는 기독교계의 반대가 정치권을 움직인 핵심 원동력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에도 국회 입법논의과정에서 여당 내 반대여론을 간접적으로 이끌었던 기독교계는, 최근에도 ‘낙선운동’을 운운하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교단대표들을 대동해 지난 17일 한나라당사를 방문,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심재철 정책위의장 등과 만나 “낙선운동을 불사하겠다”며 이슬람채권법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못박은 것이다.

종교의 정치 개입… 비난 확산

조용기 목사의 이명박 대통령 하야 발언과 함께 종교계의 잇단 압박으로 여야가 꼬리를 내리자 종교계가 정치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27일 성명을 통해 “조용기 목사의 발언은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고, 책임 있는 종교지도자로서의 금도를 넘어서서 종교의 정치 개입을 조장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로 규정하며, 이를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러 보수언론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25일자 사설에서 “어느 특정 교단이 정부 정책의 하나가 못마땅하다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퇴진 운동까지 벌이겠다면 어느 대통령인들 견뎌낼 수 있으며, 나라는 또 어떻게 되겠느냐”며 “보듬고 껴안는 종교의 말이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정치의 말을 닮아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일보> 역시 같은 날 사설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현대국가의 기본원리”라며 “보수 개신교계의 대표격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공개적으로 법 개정을 반대하면서 낙선운동까지 시사한 것은 정교분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특히 조용기 목사의 발언이 있었던 24일 청와대가 내부 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책 등을 논의,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등 정치권이 종교계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겨냥해 “정치권은 특정 종교세력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이 옳지 않으면 설득에 최선을 다한 다음 소신껏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난의 목소리가 잇따르자 조용기 목사는 대통령 하야 발언 진화에 나섰다.

조 목사는 27일 오후 “언론매체에 내가 이슬람 채권법안 문제로 대통령 하야운동까지 진행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처럼 보도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궁극적으로 보아 이슬람 자금의 유입이 본 국가와 사회에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 말한 것일 뿐 대통령의 하야를 의도적으로 거론한 것이 결코 아니다”고 해명했다.

조 목사는 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현 한 발언이 언론을 통해 확대 보도돼 취지와는 다르게 잘못된 방향으로 호도됐다”며 “대한민국과 이 대통령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회창 “정치의 종교 영향 참 큰 일”

▲ <사진=뉴시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조용기 목사의 해명 바로 다음날인 2월28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꼬리를 내렸고, 하야 발언의 표적이 된 청와대는 꿀먹은 벙어리”라며 “정치가 이렇게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면 참으로 큰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조 목사가 정부가 교회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하는 것은 교회가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가진 대통령을 협박하는 언동으로 종교분리에 반하는 위헌적인 발언일 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의 수장으로서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이 대표는 “대형교회가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자만심으로 하야 운운의 발언이 나왔다면 이것은 권력화된 교회의 오만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개신교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또 개신교계 측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를 찾아가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한 것에 대해 “이슬람 채권법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고 개신교측의 반대론도 그 나름의 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낙선운동 운운은 교회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가진 의원들의 의사표현이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선거법에도 저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UP “이회창, 정치계 은퇴만이 유일한 해답”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개신교계는 이회창 대표를 향해 다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목사 등 기독교계 지도자 3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보수 성향의 기독교계 단체 ‘대통령을 위한 기도 시민연대(PUP)’는 1일 “오만불손한 이회창 대표는 사과하고 정계를 은퇴하라”는 제목의 긴급 성명서를 시작으로 연일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PUP는 “조용기 목사의 이 대통령 하야 발언은 원론적인 것으로 종교단체의 지도자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우국충정에서 나온 당연한 발언”이라며 “이 대표가 사사건건 언론플레이나 하면서 국가의 지도자급 종교지도자를 ‘오만하다’, ‘정치계가 굴복했다’라고 폄하하는 일은 기독교계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PUP는 “미국이나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종교단체 지도자들을 이렇게 평하한 예가 없다”며 “기독교계를 폄하하고 지도자들을 무시하고서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고 퍼부었다.

PUP는 “정치계 은퇴만이 이 대표의 유일한 해답임을 밝혀 둔다”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200만 기독교인들과 함께 자유선진당에 대한 낙선운동은 물론, 이 대표의 정계은퇴를 위한 운동에 착수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또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수쿠크법안 폐기를 3월내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라”며 “그렇지 아니하면 법안 추진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우리는 다가오는 4월,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비토운동도 함께 전개 할 것임을 밝혀 둔다”고 압박했다.

분을 삭일 수 없었는지 PUP는 3일, 이회창 대표의 정계은퇴와 수쿠크법 폐기 기원 금식기도도 선포했다. 이날 PUP는 “기독교계는 종교문제를 떠나 9.11테러와 이탈리아 스페인의 지하철 테러 등으로 선진국이 이슬람화에 따른 국가적인 위기에 처한 상황을 보면서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인 사명감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다가 올 위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수쿠크법을 반대해왔다”고 역설했다.

한편 연일 공격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이회창 대표를 비롯해 자유선진당 측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일체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이 대표는 “그만큼 했으면 됐지 자꾸 얘기하면 부연하는 게 된다”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 대표는 특히 ‘현안 발언에 대한 평가가 좋다’는 전언에 “아유, 그건 모르겠는데 나한테 빵빵 총을 쏘아대는 사람은 많다”며 넌지시 괴로움도 토로했다고 한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의 꿈을 아직 안고 있는 이회창 대표가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화해의 제스추어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며 “관건은 얼마나 체면을 구기지 않고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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