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박규리 기자] 청와대에서 10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최초로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는 즉문즉답이 시도됐다. 문 대통령의 소통중심 기조에 따라 눈을 맞춘 기자에게 질문 기회가 돌아가도록 획기적으로 방식을 바꾸었다.
1시간여의 질의응답 시간동안 기자들의 질문 경쟁은 실로 전쟁에 가까웠다. 기자들은 두 손을 모두 들거나 가지고 있던 종이와 수첩을 흔들기도 했고,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인형을 흔들기도 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상당수가 지난 대선기간 동안 이른바 '문 대통령 마크맨'이었다. 그래선지 질문자로 지목받기 위해 문 대통령의 취향을 저격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의상을 입고 문 대통령을 마크했던 여성 기자들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정치외교안보 분야 마지막 질문자로 선택받은 한 기자는 질문 전 "제가 오늘 보라색을 입고 나온 것이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질문 내용이 미리 정해진 기자회견과 달리 각본 없이 진행된 만큼 민감한 질문들이 여과없이 쏟아졌다. 한번에 여러 질문들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문 대통령이 질문을 직접 고르거나 고르라고 요구하는 등 짧은 즉답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한 기자는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정부 비판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달아 문제가 되고 있다고 대통령의 입장을 물었다. 이와 관련, 지난 문 대통령 중국 국빈방문 당시 중국 경호원들의 청와대 출입기자 집단폭행을 비판하는 기사에 대해 이른바 '문빠'(문 대통령 극성지지자) 들의 댓글이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대선때도 문제가 됐을 만큼 민감한 문제였지만 문 대통령은 부드럽게 넘겼다. 본인이야말로 악성 댓글의 가장 피해자라며 기자들에게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말한 것. 즉시 기자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문 대통령은 또 '지방선거 전 단행될 2기 내각 구상에 대해 구상중인가' 라는 질문에는 "질문 자체가 뜻밖이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각본이 정해져 있는 기자회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질문과 답이다.
취임 초 문 대통령 대신 참모들이 신고리 원전, 위안부 합의 등을 발표한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이 대선때 공약한 '대통령 수시 브리핑 제도'에 대한 요구도 나왔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해외 일정도 있어 다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접촉을 더 늘려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기자들과의 즉문즉답으로 유명한 건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그는 특정 주제에 대해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등 전형적으로 기자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그 자리를 자신이 추진하려는 '오바마케어' 등 정책을 위한 설득자리로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번 자리 역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자리였지만, 문 대통령은 개헌과 북한관계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단호한 표현으로 정부의 입장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내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기 위해 국회안이 아닌 정부안을 제출할 수도 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