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도광양회(韜光養晦)냐 굴욕외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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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도광양회(韜光養晦)냐 굴욕외교냐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7.12.17 14: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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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 내용 중에는 향후 한중 관계와 관련해 되새길 대목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중국의 문물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며 고려청자, 금속활자, 동의보감 등을 예시로 들었다. 그러면서 “저는 이것이 한류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류의 바탕이 한민족이 자랑하는 문화유산들이고, 그 문화유산의 뿌리가 중국이라는 이야기다.

또 문 대통령은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이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중국몽(中國夢)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며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을 대국으로, 한국을 소국으로 자인하는 공개적인 발언이다.

시진핑이 국가목표로 내건 중국몽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다. 그 뒤에는 봉건시대 조공질서를 통해 세계의 중심을 자처했던 과거 중국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제국의 향수에 젖어있는 중국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이었다. 반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대국으로 굴기한 중국의 심기를 살펴야 하는 현실은 연설의 다른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문 대통령은 한중 근대사의 인연을 말하면서 윤봉길 의사와 함께 정율성과 김산을 언급했다. 정율성은 ‘팔로군가’의 작곡자다. 국공합작 당시 팔로군이란 이름으로 싸운 중국공산당군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며 중국인민해방군이 되고, 팔로군가는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됐다. 또 김산은 1927년 광저우봉기는 물론이고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에도 참가한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중국공산당에게는 각별한 조선인이지만 상하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남한과는 인연의 고리가 약하다. 주지하다시피 임정은 장제스의 국민정부의 지원 아래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국민정부가 난징 대학살을 일으킨 일본군에 밀려 충칭까지 피난갔을 때도 운명을 함께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은 이번 방중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의 자존심보다는 중국인의 마음을 달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 대가는 중국의 한반도 전쟁반대 선언과 경제적 실익이었다. 이번 방중을 두고 중국에 대해 자세를 낮추며 실리를 취한 ‘실용외교’라는 평가들이 나오는 이유다. 필자는 여기에 '한국식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을 첨언하고 싶다.

1980년대말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중국은 내부적으로 천안문사태 등 체제위기를 맞았고, 외부적으로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갈등을 빚게 된다. 이때 실용주의의 대명사인 덩샤오핑은 ‘20자 방침’을 내걸었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며, 서두르지 말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기르며, 꼭 해야할 일이 있을 때만 나서라(冷靜觀察 沈着應付 站穩陣脚 韜光養晦, 有所作爲)’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1990년대 상선 은하호가 미국 CIA의 오판으로 억울하게 수색당하고,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이 오폭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인내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이 휘청거릴 때 기회를 잡고 비로소 대국 굴기에 나섰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이번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으로 중국에 편향된 교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절감했다. 적어도 이를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한국도 칼날을 칼집에 감춰 예기를 숨기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야 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를 게을리하고 중국이 베푸는 실리에 안주한다면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감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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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2017-12-25 10:59:40
약소국 또는 중강국르로 강대국의 틈새에서 강소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한국의 과제다. 문 대통령이 그 일을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