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구원투수 구본준의 ‘만년2위’ 야구경영론
상태바
LG 구원투수 구본준의 ‘만년2위’ 야구경영론
  • 김시은 기자
  • 승인 2011.01.14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구도 회사도 내 맘 같지 않네…”

[매일일보=김시은 기자] 지난해 최악의 해를 보낸 LG家의 구원투수로 나선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야구 사랑이 남다르다. LG트윈스의 구단주이기도 한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LG전자의 경영현안을 야구에 비유하는 ‘야구 경영론’을 펼쳐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그러나 이러한 야구경영론에는 ‘야구도 회사 경영도 내 맘 같지 않다’는 신세한탄이 담겨있다.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낸 LG전자의 경영 못지않게 LG트윈스의 성적도 구 부회장에겐 ‘영~’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LG家 구원투수로 나선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남다른 야구사랑

구 부회장, LG전자 경영 LG트윈스 2군 비유 ‘독한 DNA론’ 제시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이래저래 마뜩치 않은 성적 때문일까. 구 부회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LG구단주를 맡고 있다. 매번 6, 7등 밖에 못하는지, 내가 직접 야구를 할 수도 없고…”라며 혀를 찼다.

그는 “야구에서 2군 선수들을 키우듯, 회사도 외부 인력을 영입하기보다 내부 인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며 LG의 경영현안을 야구에 빗대어 표현했다.
 
‘언중유골’ 아닌 ‘촌철살인’ 야구경영론

이날 구 부회장이 빗댄 LG의 경영평가를 잘 들어보면 ‘언중유골’이 아닌 ‘촌철살인’형 멘트가 담겨있다. 그는 LG의 현 현황을 LG트윈스의 1군이 아닌, 2군 선수에 비유했다. 만년 2위에 머물러 있는 LG전자에 대한 뼈아픈 한탄이 담겨있는 셈이다. 

구 부회장은 “LG트윈스 2군이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2군선수들에게 자유계약선수(FA)를 영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그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트윈스 야구단은 2009년 SK에서 데려온 이진영을 제외하곤 외부 영입(FA) 성공사례가 없다. 2001년 내야수 홍현우, 2004년 투수 진필중, 2007년 투수 박명환 등을 스카우트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외부 영입이 없으면 2군 선수들이 1군으로 올라갈 기회가 많아 훈련에 매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구 부회장은 “LG전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LG전자 직원”이라며 외부 영입은 2, 3년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부사장급 외국인 임원 5명을 내보냈다. LG전자 내부에선 외국인 임원과 한국인 직원과의 소통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언어문제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이질감도 컸던 것이다. 

이 외에도 구 부회장은 LG트윈스에 신연봉제를 도입했다. LG트윈스 신연봉제도의 핵심은 입단 연차와 상관없이 성적이 좋은 선수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는 데 있다. 대신 성적이 나쁘면 파격적으로 삭감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일예로 지난해 연봉 5억원을 받았던 박명환은 4억5000만원이나 깎인 5000만원에 연봉 계약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봉 2800만원을 받았던 이병규는 새로운 보상시스템에 따라 올해 1억원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기가 오른 이병규는 최근 전지훈련에서 5할대의 타율로 수위타자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주전 유격수로 자리매김한 2년차 오지환(21)의 파격적인 연봉 인상도 화제에 올랐다. 지난해 연봉이 2400만원에 불과했던 그는 1억원을 제시받았다. 구 부회장은 “프로골퍼는 성적이 나쁘면 연봉이 아예 없는데 야구선수는 3억 받다가 그래도 2억은 받는다”며 신연봉체제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물론 이러한 고과제도가 LG트윈스의 승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LG전자의 연봉체제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여담만 들려올 뿐이다.

구 부회장은 LG전자의 현 경영을 “제조회사는 연구개발(R&D)·생산·품질이 가장 중요한데 기본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스마트폰의 경우 패러다임 변화 때 준비를 안 해 타격을 입었다”고 반성했다.

일각에서 ‘LG전자의 조직문화가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LG트윈스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LG전자는 강하고 독한 실행력이 없어진 것 같다”며 “독한 문화를 DNA로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구 부회장은 조직에 독한 DNA를 심어주기 위해 공식석상에서 야구경영론을 펼친 셈이다. 그리고 이는 LG전자와 LG트윈스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였다.

양날의 칼, 잘하면 ‘축하’ 못하면 ‘질책’

정체기에 머문 만년 2위 LG전자, 평균 6, 7위 LG트윈스와 ‘닮은꼴’
야구단, 관심·응원 고맙긴 한데…성적 안좋을 경우 책임 추궁 ‘부담’

구 부회장의 각별한 야구사랑은 형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구 회장은 1990년 창단 이래 LG트윈스 초대 구단주로서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LG트윈스는 구 부회장(당시 LG상사 대표)을 지난 2008년 신임 구단주로 맞았다. 이는 구 부회장이 직접 자청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 부회장은 LG트윈스의 구단주가 되기 이전부터 야구를 좋아하고 LG트윈스에 대한 애정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은 지금도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잠실구장을 찾는다. 선수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며,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경기에 집중한다. 경기가 끝나면 승패에 관계없이 더그아웃으로 내려가 선수들을 격려한다. LG트윈스의 구단주이기도 한 구 부회장의 야구사랑은 이처럼 남다르다.

구 부회장은 구 회장으로부터 LG트윈스 구단주 바통을 받자마자, 당시 대표로 있었던 LG상사 내에 직장인 야구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또 그 다음해에는 LG트윈스 선수들이 운동하는 일본 오키나와 전지 훈련지를 방문해 감독과 선수단을 격려했다.

당시 그는 선수단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정신력, 체력, 실력에서 최고가 돼 4강에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하자”면서 선수들을 다독였다.

이런 구 부회장의 남다른 야구사랑은 LG家에서 보면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구 부회장뿐 아니라 구본무 회장 역시 야구단 창단시절부터 예고도 없이 수차례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전했다. 또 회식자리에서 선수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격려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구 부회장의 둘째형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야구선수 출신으로 2005년 야구 관련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프로야구인의 모임인 일구회로부터 ‘야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구 부회장의 야구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야구와의 인연에서 자리한다. 야구명문 경남중 출신인 구 부회장은 중·고시절 기수별 야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또 자신이 활동하는 야구 동호회 회원들을 잠실구장으로 초청해 함께 야구 관전을 하는 등 한 달에 한차례는 필드에서 뛴다.

LG상사의 대표이던 구 부회장이 위기의 LG를 구하기 위한 적임자로 선임된 이후, 그를 자칭, 타칭 ‘LG의 구원투수’로 부르는 것도 그가 소문난 ‘야구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룹 내 높으신 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큰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엔 책임 추궁이 더욱 강력하게 돌아온다. 구단 운영과 관련해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있으나 구단의 큰 결정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들 동호회 회원들의 입김이 만만찮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의 오너가 야구에 너무 깊숙하게 관여하면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구본준 부회장은 “LG트윈스는 왜 이렇게 6등, 7등밖에 못하냐…내가 직접 야구를 할 수도 없고…”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LG전자의 실적이 만년 2위에 머문 것처럼 LG트윈스는 지난 8년 동안 5등을 넘어 본적이 없다. 평균 6, 7위란 순위가 말해주듯 포스트시즌에 단 한 차례도 진출하지 못한 마뜩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