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中企 기술탈취, 법·제도적 허점부터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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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中企 기술탈취, 법·제도적 허점부터 손봐야
  • 이종무 기자
  • 승인 2017.12.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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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이종무 기자

[매일일보 이종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에서 “정부는 중소기업을 우리 경제의 중심에 두겠다”며 “대기업의 갑질과 불공정 거래로부터 중소기업을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홍종학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지난달 21일 “대기업의 기술탈취와 납품 단가 일방적 인하 등 불공정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사전 감시와 사후 처벌 강화 등 촘촘한 감시를 통해 구조적으로 근절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취임 일성을 내걸었다.

정부가 나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에 본격적으로 팔 걷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시급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업 부설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2000여 곳의 중소기업 가운데 기술탈취를 경험한 사례는 527건, 피해 신고액만 3063억6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821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탈취 실태조사에서는 7.8%인 644곳이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표면에 드러난 수치만 이렇다. 빙산의 일각이다. 조용히 눈물만 훔치는 중소기업은 더 많다.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사례까지 합할 경우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대기업의 갑질’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적 구조망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5곳이 넘는 대기업에 주요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경기도 시흥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법·제도적 구멍이 너무 많다”며 “피해를 받은 사람이 모든 증거를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 역시 “기술탈취 행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 전(前) 단계에서 중소기업의 기술 내용이나 영업 비밀을 알게 된 대기업이 이를 습득해 새로 가공한 기술을 자기 회사의 기술이라며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하도급법’이 적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렇다보니 어느 행정기관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책임 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피해 사실을 알고도 소송에서 질 것을 예단하고 입을 닫는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09~2013년까지 5년간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36건 가운데 승소한 것은 4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본안 소송까지 진행된 20건을 살펴보면 단 한 건의 승소도 없다. 장기화되는 소송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회유까지 겪게 되는 것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법적인 물량 공세 앞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술탈취는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의욕을 그 싹부터 잘라버려 성장 사다리에 막 오르는 기업의 기회를 문전에서 차단시키는 행위이자 청년들이 창업을 기피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문제를 인식해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서는 것은 다행이지만, 법·제도의 허점을 선결하는 것이 ‘첫 단추’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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