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자율주행차와 빨간깃발법(赤旗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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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자율주행차와 빨간깃발법(赤旗法)
  • 박진호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장
  • 승인 2017.10.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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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장

영국은 1801년 세계 최초로 증기자동차를 개발했다. 마차와 말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당시 승객 8명을 태우고도 시속 13km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런던 시내를 주행 하는 증기기관 승합버스를 만드는 등 자동차산업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1865년 영국은 마차를 끄는 말이 자동차를 보고 놀라 폭주한다는 이유로 ‘빨간깃발법(赤旗法, Red Flag Act)’을 도입했다. 적색 깃발을 든 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걸어가면서 자동차가 접근한다고 주변에 알리도록 했으며 도시에서는 시속 3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도록 규제했다. 증기기관 버스가 새로 선을 보이자 승객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마차운송업자들이 후원해 만든 법률이다.

이는 증기자동차 기술발전을 후퇴시키고 마차의 시대를 지속시키는 계기가 됐다. 1896년 赤旗法은 폐지됐지만 이로 인해 영국 자동차산업은 독일, 프랑스 등 후발주자보다 뒤처지게 됐다. 정책과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대표주자로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과거 TV나 영화에서 보았던 상상속의 자동차가 현실이 된다는 기대에 모두가 흥분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자율주행차 기술경쟁을 보면 자동차회사도 아닌 IT업체 구글이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구글의 선제적 투자와 IT 기술력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신속한 법률개정 등 규제개선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 연방정부는 ‘자율주행법(SELF DRIVE act)’을 발의해 하원을 통과시켰다. 각 주의 자율주행차 제도를 통합하고 안전기준 제외 대상을 확대시켜 자율주행차 산업 주도권 확보 경쟁에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일본도 자율주행차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4차 산업 샌드박스(Sandbox:규제 일시 정지) 제도 도입, 정부부처를 통할하는 전략혁신 프로그램(SIP:Cross-Ministerial Strategic Innovation Promotion Program)의 운영 등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지난 1월 미국 뉴욕시의 북부교통협회(Upstate Transportation Association)는 자율주행기반 우버, 리프트 등의 차량 공유서비스가 수천 개의 일자리를 없앨 수 있다며 50년간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솔한 제도개선은 돌이키기 어려운 부작용이나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규제가 자율주행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현대판 적기법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나라도 2015년 자율주행차산업을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선정했고 2016년 자율주행차의 시험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2020년에는 레벨3 자율차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율차 기술개발을 선도하는 나라와 견줘 기술개발과 제도개선에 얼마큼 경쟁력이 있는지 적기법과 같은 저해요소는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별한 기술이라고 해도 적기법과 같은 각종 규제가 기술보급과 자율주행차 운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EDR(Event Data Recorder:사고기록장치) 정보의 활용이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보험사가 EDR 정보를 확인하려면 고객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공개되면 불리해지는 정보라면 누가 정보 공개를 동의하겠는가?

우리 주변에 자율주행차 개발을 방해하는 21세기형 적기법이 나타날 소지는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차 산업발전 속도와 사회적 합의 수준에 맞는 유연한 정책수립을 통해 산업과 제도가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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