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바다에 빠져 봐야만 물의 깊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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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바다에 빠져 봐야만 물의 깊이를 알 수 있다
  • 홍석경 기자
  • 승인 2017.10.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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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올 하반기 서울 여의도에서 증권가는 ‘무료 수수료’열풍에 휩싸였다. 주식거래수수료 평생무료를 선언한 NH투자증권을 포함해 신한금융투자(13년)와 KB증권(10년), 한국투자증권(5년), 삼성증권(3년) 등 주요 증권사가 비대면계좌 개설 고객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주식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는 수익 비중에서 수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부문을 줄이고 투자은행(IB)과 자기매매, 자산관리(WM) 등의 수익원을 다양화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산업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최근 수 년간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등 상위 5개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를 기반으로 대형 증권사 대부분의 전체 수익 중 IB가 차지하는 수입비중도 늘어났다. 

사업여력은 더 커졌는데 대형사는 왜 주식거래수수료에 집착할까. 대형 증권사가 가장 쉽게 돈 벌 수 있는 수입원 중 하나가 바로 주식거래수입원 이다.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식시장 활황으로 거래대금이 늘면 프로모션을 진행해 고객을 끌어 모은다. 각종 이벤트와 경품을 제공해가며 고객을 유인하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큰 증권사 일 수록 유리하다. 현재 수수료 점유율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대형증권사와 거래 수수료가 싼 키움증권이 대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대형사의 수수료 무료는 사업 다변화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무료 수수료로 고객을 확보한 이후 다른 상품과 연계시키려는 전략이라는 관측이 크다. 금융당국도 이번 수수료 무료 이벤트가 다른 금융상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는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이미 수수료 점유시장에서 밀리는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형사는 기업 브랜드 가치도 떨어지기 때문에 동시에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고, 자본이 열악해 수수료 의존도가 더 높아 대형사의 무료이벤트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자기자본이 1조원 채 안되는 일부 증권사에선 4조원 짜리 대형 증권사와 IB수익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모험을 지나치게 회피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화석처럼 오래된 얘기가 바로 해외진출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형 증권사 대부분은 해외진출 이미 수십년전에 했다. 사업 규모를 키우지 않아서 그렇지 진출한지는 한참 전이다. 대부분이 현지 고객을 국내 주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리테일 영업을 한다. 이렇다 보니 매년 적자를 보고 있는 해외법인도 태반이다.

해외사업에서 성과를 내세우는 증권사 대부분 또한 부동산 PF 등을 내세운다. 그 마저도 국내서 이뤄지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결국 안전한 사업위주로 수익원을 찾다보니 수수료 같은 부문에서만 점유율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경영전략은 위험성을 수반하는 증권업 특성과는 상당히 역행하는 구조다. 위험자산에서에서 수익을 창출해 고객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증권사 업무다. 만약 고객들이 증권사에 돈을 맡기지 않고 은행을 통해 주식거래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도 종종 해본다.

물론 사업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도 좋지만,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지나친 경쟁이 산업 전체를 축소시키는 원흉이 되서는 안될 것이다. 바다에 빠져본 사람이 물의 깊이를 알 듯. 지나친 위험회피는 생존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담당업무 : 보험·카드·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과 P2P 시장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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