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된 북한 붕괴와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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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화된 북한 붕괴와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0.12.0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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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中 대북정책 핵심 “김정일 화 안나게 하는 것”…김정일 사후는 보장 못해?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keaks.org)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에 따른 외교적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 중국 사이에 북한 김정일 체제의 붕괴 이후를 대비한 한반도 통일 방식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던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개된 외교전문에 따르면 기존 인식과 달리 북한의 강력하면서 유일한 후견자인 중국의 대북 정보력이 기대이하이고, 북한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고, 특히 중국 고위급 인사들의 대북 인식이 과거와 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이나 미국 측과 접촉하는 중국의 일부 고위급 인사들은 남한중심의 한반도통일 가능성에 대해 공공연하게 언급해왔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원해온 중국이 사실상 북한의 변화가능성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중국에 북한 붕괴 후 남한 중심의 통일을 승인받기 위한 경제적 대가 제공에 대한 논의가 한미 간에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온 정황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이명박정부와 오바마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의도적 무시’가 사실상 북한의 자멸을 기다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올 3월 천안함 폭침을 시작으로 8월의 NLL이남 영해 포격, 11월의 연평도 기지 및 민간인 거주지역 포격으로 이어진 일련의 무력도발 행위들이 몰락해가는 북한체제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보수진영의 해석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배경으로 평가된다.

▲ 11월29일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해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사진 오른쪽)으로부터 한미연합훈련 현황을 보고받은 뒤 훈련에 참가한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 왼쪽이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이다.(사진=청와대 제공)
[이슈포커스] 위키리크스 폭로 美 외교전문

이명박정부, 중국에 북한 서북부 떼어주고 남한 중심 통일 승인 계획했다
북한 무시 통한 ‘枯死정책’…“극한 상황 감수, MB 임기 끝까지 버틸 작정”

천영우 “中, 북한 변화 포기…북한도 이 사실 알고 있어”…北 극한도발 배경
中, 북한 체제 유지 원하는 것이 ‘기본입장’이지만 붕괴시 행동계획도 모색중

최근까지도 중국 측 내부입장에 정통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정부가 만약 북한 정권의 붕괴와 핵무장 중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붕괴보다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어 왔는데, 위키릭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이러한 분석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재직 중이던 올해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북한이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된 상태이고, 김정일 사후 2~3년 내에 정치적으로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수석은 특히 “김정일 사후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 근거로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정부를 ‘가장 무능력한 정부’라는 인식과 함께 한반도가 남한의 지배하에 통일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 수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크지 않으며, 중국정부 또한 북한 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경제적 유인을 사용할 아무런 의지가 없다”며, “이 사실은 북한 지도층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천 수석의 발언은 올 3월 천안함 폭침을 시작으로, 8월의 NLL 포격 침범, 11월의 연평도 군기지 및 민간인 거주지역 포격 그리고 연내 이루어질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경기도권에 대한 포격 가능성 등 일련의 한반도 긴장상황 강화 과정의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단초이다.

▲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北 붕괴시 중국의 행동은?

위키릭스 폭로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중국이 김정일의 후계자 문제부터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과 핵실험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사전에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고, 이는 북한이 중국에조차 자신들의 의도를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미국이 중국에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수입 사실을 알려줬을 때 중국 측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계획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다는 북한의 최근 발표는 중국의 대북정보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청궈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당시 카자흐스탄 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해 6월 카자흐스탄 주재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현 대북 정책 목표는 북한정부의 비핵화 약속 유지와 체제 유지 그리고 김정일을 화나게 하지 않는 것(don't drive mad)”이라고 말했다.

이 만남에서 청궈핑은 “한반도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평화통일, 단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가로 있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뒤집어보면 김정일이 사라진 이후의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기구에 파견된 중국의 한 당국자가 미국 측 인사를 만나 “북한이 심각한 불안정 상태에 들어가면 중국은 30만명의 난민을 수용할 태세가 되어있으며, 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경우 군을 동원해 국경을 봉쇄한 뒤 난민촌을 만들어 인도적 지원을 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 체제 붕괴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밝힌 것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이밖에 지난해 4월 허야페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당시)은 북한이 미국과의 회담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독단적으로 실시하는 것과 관련, 북한에 대해 “버릇없는 아이”같다고 말하면서 북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련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중국이 북한의 체제유지를 통해서 역내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 목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체제붕괴시 행동계획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천 수석은 “중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현상유지에 만족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며, “중국이 북한에 대해 체제붕괴의 벼랑으로 떠밀지 않는 한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움직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 수석에 따르면 모 중국 고위간부는 “한국 통일은 남한의 주도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믿으며, 2006년 핵실험 이후 중국 고위 지도층 사이에 북한의 완충지대로서 가치가 별로 없다는 새로운 현실을 직시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천 수석은 북한 붕괴시 중국은 비무장지대(DMZ) 이북에 미군이 주둔하는 상황을 분명히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북한이 붕괴할 경우 중국은 한미일과의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감안,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MB, 대북무시 통한 북한 붕괴 유도

지난해 1월 미국 외교관이 청와대 내부소스를 인용해 보고한 외교전문에는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압박에 굴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며, 필요하다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남북관계를 동결상태로 둘 준비도 되어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문에는 “이 대통령의 보수적인 보좌진과 지지층에서는 설령 심각한 극한상황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대북 무시 정책이 북한체제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정책 차관보를 지난해 7월 만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이 2015년 이후까지 살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북한이 붕괴할 경우 한미 양국이 빠른 공조 필요성을 밝혔다.

또한 올 2월 캠벨을 만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화폐개혁 이후 북한 내부 사정이 점차 불안해지고 있다”는 분석을 전하기도 했으며, 북한 경찰이 김정일의 중국행 철도 레일에서 폭발물을 발견했다는 내용도 외교전문에 나타난다.

▲ 북한 나진 지구를 구글어스 위성으로 내려다본 사진. 한반도 통일시 중국에 떼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나진 지역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으로, 북한 붕괴시 중국의 태평양 진출 통로가 막힐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왔다.

감 떨어지기 기다린 대북정책?

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질적으로 달라…통일 대가 고민 필요한 시점
박선원 “10월 중순 워싱턴 고위관계자 ‘중국에 북한땅 떼줘야’ 발언…
신라가 삼국통일 한다며 고구려 절반이상 당나라에 떼 준 것 떠올라”

위키릭스 외교전문 폭로를 통해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김정일 사망에 따른 북한의 자체 붕괴만을 기다리고 앉아있는 방관자적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구체적인 급변사태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일성이 죽었으니 북한 체제는 곧 무너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 아래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특권계층에 속한 고위급 인사들이 최근 대거 한국으로 망명해왔다는 정보가 드러났고, 갑작스레 등장한 김정은과 달리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훨씬 이전부터 권력승계 작업을 완수해놓은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북한의 체제붕괴 후 중국이 남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가 하는 내용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폭로된 외교전문에 따르면 정부측은 중국 기업에 북한의 광산 개발권 등을 넘겨주는 방식을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이 1일 전한 내용은 정부의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박선원 연구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위키릭스에 따르면 스티븐슨 주한미대사가 워싱턴에 ‘한국주도 통일시 중국 반대 무마용 경제보상 필요성’을 보고했다”고 언급하면서 “충격이다. 10월 중순 워싱턴에서 만난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이 고위관계자는 “김정일 정권이 곧 망할텐데 한국이 북한을 다 접수하면 중국이 싫어할 테니 좀 떼줘야 한다”고 말했고, “무슨 말이냐 북한 땅 일부를 떼주자는 거냐?”는 질문에 수긍하면서 “어디? 신의주나 나선지방?”이라는 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한편 박선원 연구원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다며 고구려 절반이상 당나라에 떼준 게 떠오른다”며, “한국관리들이 미국과 비밀대화에서 파란불을 켜줬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 도대체 이게 뭐냐?”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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